안녕하세요. 신현숩니다.

사방에 어둠이 내린 뒤에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절로 도란도란 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됩니다.
잔메(盃山) 자락에는 지금 어둠이 짙게 깔렸습니다. 
이럴 때면 소생은 이따금 그 어둠 속에 정겨운 친구들이 둘러앉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한 느낌으로 제가 책을 쓰는 까닭에 대해 
두서없이 몇 마디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잔메(盃山)'라는 작은 산의 기슭입니다.
술잔(盃)을 닮은 작은 산(山). 
한데, 소생은 체질상 술을 거의 하지 못하니
산 이름으로 인해 술 생각이 자주 난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술친구(?)들이 자주 생각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소생이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지난 2001년 9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두문불출하며 애오라지 저술작업에만 전념해 왔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1990년대 초에 소생이 번역하고 편역한
「아벨·깔레바로(Abel Carlevaro)의 기타연주법」과 「기타교범」을 
삼호출판사에서 출간한 바 있습니다만,
그것이 국내 기타인들의 테크닉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보는 소생의 마음이 좋았습니다.

당시까지도 국내 기타 교본들에는 예외없이 오른손 손목을 직각으로 꺾는,
소위 '척측외전(尺側外轉)' 또는 '척측외향(尺側外向)'의,
매우 부자연스럽고 기형적이기까지 한 '척외수직 자세'가
오른손의 '바른 자세(正姿勢)'로 소개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국내 기타인들이 그러한 자세로 기타를 연주했었습니다.

    
                ※ 척외수직 자세

그러나, 소생은 일찍이 기타 테크닉을 연구하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해 왔던 터여서
그러한 '척외수직 자세'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함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아벨·깔레바로(Abel Carlevaro)의 기타연주법」의 한글 번역본
원고를 쓰면서 그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책의 제37 ~ 45페이지에 과감하게
그러한 사실을 밝히고, 바람직한 오른손 연주자세에 대하여 기술했었습니다.
물론, 원서에는 없는 내용이었으며,
별도의 '참고' 난을 두어 추가한 것입니다.
책이 출판된 이후로 국내 기타인들의 오른손 연주자세가 급격하게 
현재와 같은, 자연스럽고 능률적인 자세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와 같은 오른손 연주자세의 변화는 당연히 손가락 동작의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음질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더욱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척외수직 자세에 기인하는 가볍고 거칠고 
원달성(遠達性, 소리가 멀리 도달하는 성질)이 없는 음질로부터   
힘 있고 둥글고 원달성을 가진 음질로의 변화가 그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를 보는 소생의 마음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책이 가진 활자 매체로서의 위력에 크게 놀랐습니다.
만일 레슨이나 강의를 통해 동일한 결과를 얻으려 했다면
평생을 바쳐도 불가능할 일이었습니다. 

국내 기타인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매일 연습 과제'의 하나로 
숭배해 온 것 중 하나가
「세고비아의 24 장·단조의 음계연습」이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거장 세고비아가 매일 연습했었던 연습 과제로 알려져 있어,
그에 대한 국내 기타인들의 신뢰는 거의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리듬이 무시된 그 엉터리 「음계연습」의 폐해(弊害)가 얼마나
막심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소생은 그러한 맹목적 추종의 풍조가
늘 답답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기회가 주어져서, 
계간 잡지 「클래식기타 1999년 봄호」에
그러한 사실을 그 이유를 밝혀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 해당 글).
물론 그 대안으로 리듬이 있는 새로운 「24 장·단조의 음계연습」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그 이후로 예의 그
(리듬이 없는) 해괴한 「세고비아의 24 장·단조의 음계연습」을
연습하는 분들이 거의 사라지는 변화를 보았습니다.
그 결과, 국내 기타인들의 스케일 연주가 보다 가지런해지고
레가토가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보는 소생의 마음이 좋았습니다.

소생이 고안하여 제시했던 새로운 「(다른 여느 악기의 음계연습이
그러하듯 리듬을 가진) 24 장·단조의 음계연습」은 
스케일 연습법과 관련한 내용을 좀더 추가하여 단행본으로 저술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출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의 기타 학습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레몰로 주법은 여러 종류의 (오른손) 고급 테크닉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중요한 클래식기타 기본기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트레몰로 주법에 관한 한 예로부터 그 원리나 체계적인 연습 방법
등에 대한 자료나 문헌이 전무(全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2001년 5월, 소생은 「알함브라의 회상과 트레몰로 주법의 비밀」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트레몰로 주법의 구체적인 해부학적 원리와
그에 대한 체계적인 연습방법 등을 담아 출간했습니다(※ ☞ 관련 글).
그 이후로 「알함브라의 회상」을 연주하는 많은 분들의
연주에서 체계적인 연습의 흔적과 트레몰로 주법의 메커니즘과 관련한
여러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보는 소생의 마음이 좋았습니다.

「알함브라의 회상과 트레몰로 주법의 비밀」은 기타 음악사(音樂史)상
트레몰로 주법의 해부학적 원리와 그 연습 방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한 최초의 책입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외국어로도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의 기타 학습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9년 9월 「기타 프라자」라는 잡지에
최초로 기타 음악과 관련한 글을 쓴 이후,
소생은 책이나 잡지 등을 통해 소생의 경험이나 연구해 온 것들에 대해
써 왔습니다. 
그리고, 소생이 개발새발 쓴 글들이 국내 기타인 여러분에게 
여러모로 긍정적인 도움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한 징후를 보는 소생의 마음이 좋았습니다.
  
국내 음악도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음반의 연주를 무턱대고 베끼기에 급급한 수동적인 연주 관습은
늘 소생의 마음을 우울하게 했었습니다.
우리 음악도들의 연주에서는 서양 음악에 내재하고 있는 운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흔히 눈에 뜨이곤 합니다.
이는 서양 음악에 내재하는 
인도유럽 어족(the Indo-European family of languages)의 운율적 특성이
우리 언어가 갖는 운율적 특성과는 현저하게 다른 데 기인하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만. 
해서, 소생은 「악상 해석과 표현의 기초  ―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강약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써서 지난 해(2005년) 12월 출간했습니다(※ ☞ 관련 글).
그리고, 국내 음악도들이 남(음반)의 연주를 무턱대고 베끼는 악습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음악을 스스로 해석하는 변화가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소생은 마음이 또한 좋을 것입니다.

「악상 해석과 표현의 기초...」는 서양 음악사(音樂史)상
음악 어법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한 최초의 책입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외국어로도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의 음악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생의 하드 디스크에는 현재 5, 6권의 
(음악 또는 기타 음악에 대한) 책의 원고들이 이미 탈고되었거나
또는 거의 탈고에 가까운 상태로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소생의 머릿속에는 아직 활자화하지 못한
생각들이, 책으로 구체화시켜야 할 못다한 이야기들이
얽히고 섥힌 상태로 또아리들을 틀고 있습니다.
소생이 저술 작업을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는 것은,
(이미 탈고한 원고를 포함하여) 현재 저술 중이거나
또는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이 대개는 테크닉의 비밀이나
음악적 노하우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이나 그 밖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러한 지식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체계적인 설명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어서 아직까지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거나,
또는 '테크닉 비밀주의'로 인해 그 노하우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거나,
또는 소생이 최초로 발견하거나 깨달은 것이어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인.
그러한 것들이 모두, 여태까지 제가 써 온 글들의 성격이 그러했듯,
음악의 또는 기타 음악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이
분명해서, 적어도 소생의 판단으로는 그렇게 생각되어서, 그만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일에 발목이 잡혔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시골 사람이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이 일이 너무 힘겨워서
때때로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평소 소생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국내 기타 음악이 크게 발전하여,
해외 유학을 떠나는 국내 기타 학습자들보다
외국에서 국내로 유학을 오는 외국 기타 학습자들이 더 많아지는
변화가 소생의 살아 생전에 꼭 실현되기를 바라는 바램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양음악이 이 땅에 들어온 지도 어언 100여년이 넘었고,
유학을 다녀온 음악인의 수(數)도 이젠 넘쳐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음악 교육의 자립을 이루어야 할 충분한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구걸 행각(?)을 계속하는 것은 염치를 모르는 짓입니다.
그것이 (경제적 구걸 행각이 아니라) 문화적 교육적 구걸 행각이라 해서
그것을 무한정 지속하는 것이 뻔뻔스럽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루 빨리 자립하고, 스스로 창의적인 자산을 만들어 비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남에게 베풀 수도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보유한 세계적 연주가의 99...%가 교육적 구걸을 통해
길러진 터이고,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음악의 99...%가 구걸해 온
남의 것이라는 사실이 현실임을 직시한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젠 정말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줄줄이 해외 유학을 떠나는 수많은 음악도들을 보면서도
가르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러한 사실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절망입니다.
서양음악이 도입된 지 100여년이 넘었고,
유학을 다녀온 음악인의 수(數)가 넘쳐 나고 있음에도
자체 교육만으로는 도무지 세계적인 음악가를 길러낼 실력이
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염치와 자존심이 살아 있는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말이 난 김에 음악도의, 특히 기타(guitar) 음악도의 해외 유학과 관련하여
몇 말씀 여쭙고자 합니다.
줄줄이 해외 유학을 떠나는 후배들을 보노라면 그들이 사고무친한 타국에서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유학 길을 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못난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미안하고 슬프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기원하며 그들의 유학 길을
축하는 할지언정 결코 말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자체 교육만으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길러낸 실적이
전무(全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릴 염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삶을 연습으로 살아 보는 사람은 없으며,
자신의 인생은 오로지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스스로 가장 유익한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음입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가르친 제자에게 유학을 권유하는
스승의 아픈 마음까지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자신의 제자를 유학 길에 오르게 한 것이 마치 업적이라도 되듯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은 진정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만든 화살은 모두 다른 사냥꾼에게 주어 버리고 
빈 활만 들고 다니는 사냥꾼은 ― 스스로 사냥하기를 두려워 하는
사냥꾼은 ― 더 이상 사냥꾼이 아닙니다.
더구나, 자신의 화살을 모두 남에게 주어 버리는 짓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냥꾼이라면, 그가 사냥꾼인지 아닌지를 논하기 이전에
정신이 온전한 사람인지부터 먼저 논해야 할 일입니다.
스스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 몸무림이라도 쳐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화살은 자신의 활에 걸어야 합니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좀더 덧붙이자면...
유학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리고 콩쿨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진정한 명인의 탄생이 유학이나 콩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망고레, 세고비아, 예페스, 빌라·로보스, 아벨·깔레바로,
첼로의 명인 카잘스, 피아노의 명인 호로비츠,
바이얼리니스트 안느-소피에 무터 등등, 
유학이나 콩쿨과는 무관하게 명인이 된 이들이 얼마든지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물론 안느-소피에 무터는 콩쿨 경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7세와 11세에 독일 연방 청소년 
경연대회에 참가한 것이 고작입니다.
 
자신만의 음악적 자산을 이미 가진 이에게는
유학 같은 절차가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풍부한 음악적 자산을 가진 이에게는
'표준적인 연주 기술자를 뽑는 콩쿨' 같은 절차가
애시당초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보석을 스스로 알아보는 눈을 가진 청중에게
보석 감정서(콩쿨 수상 경력)란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가진 문제 중의 하나는 우리네 청중 중에는
그러한 눈을 ― 귀를 ― 가진 이가 극히 소수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가일지라도 컨디션에 따라서는 연주를 완전히
망치는 날도 있습니다. 콩쿨 수상 경력이 화려한 연주자의 그러한
수준 이하의 연주회에서는 연이어 기립박수를 보내면서도,
정작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뛰어난 연주가의 찬란한 연주에는
별 반응이 없는 코메디는 그래서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음악적 자산에 대해서입니다.

남에게 배우는 것만으로는 '일류'가 되지 못합니다.
기초 학문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자체 소프트웨어의 개발·생산을 통해
음악적 자산을 창출하고 축적하여 스스로 앞서 나아가지 않는 한,
영원히 다른 사람 다른 나라의 꽁무니만 뒤쫓게 될 것입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스포츠이든 일류만이 그 모든 혜택을 다 누린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분야에서의 '2류'란
두 번째 가는 등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싸구려 인생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중남미의 작은 나라들에서조차
자신들의 음악적 자산을 배경으로 세계 음악 문화에 기여하고,
스스로 '일류'의 반열에 오르는 음악가들이 즐비합니다.
소생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음악가들 정말 자존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성(自省)은 음악가 스스로 할 일이지 
다른 뭇 사람들이 국내 음악 문화의 후진성을 문제로 국내 음악가들을
다그치거나 질책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후진성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 사회에 그리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뭇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국내에서 음악 분야의 전문 서적을 저술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에 비해
그 경제적인 댓가는 없습니다.
학술서적 출판의 실상은 한마디로 비참합니다.
모두 해서 기십권도 팔리지 않는 대학 교재가 허다할 정도이니..
(대학별로 한 권씩만 팔린다는..한 권만을 구입하고 나머지 필요량은
모두 복사하여 나누어 가지므로. ☞ ※ 조선일보 2001년 12월 7일자
제3면, 기자수첩 - "학술출판 못하겠다" 기사 참조).
더욱이, 학술서적 출판 중에서도 음악 분야는 더욱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저자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인건비 회수는 아예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하며, 원고 작성에 들어간 각종 경비와 그리고 인쇄비
정도라도 건지면 천만 다행인 정도인 것이 그 실상입니다.
적어도 제 자신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소생은 그래도 음악 분야에서만큼은 하나같이 베스트 셀러로
회자(膾炙)되는 책들만을 저술해 왔습니다. 아니, 소생이 그 동안 저술한
책들이 모두 베스트 셀러였으므로 그나마 인쇄비 정도는 건진 것입니다. 
소생의 경우가 이러하니, 다른 이들의 경우는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복사하지 않고 책을 구입하는 분들에게 진정 복이 있을진저!

그런데도 왜 책을 쓰냐고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국내 음악의, 기타 음악의 자립과 자존(自存)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작곡을 하시는 분도, 연주를 하시는 분도, 레슨을 하시는 분도,
악기를 제작하시는 분도, 악기를 열심히 배우시는 분도 있어야 하듯이 
책을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하루 빨리 음악 교육의 자립을 이루어 내고, 나아가서는 음악 분야의
자산을 만들고 축적하여 자존(自存)을 세우고 또한 그 여력을 비축하여
남에게 베풀 수도 있는 처지가 되기 위해서는요.

하지만, 역시 복사와 복제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환경에서는 작곡이든
연주이든 저술이든, 스스로의 문화적 자산을 창출해 내고
그것을 축적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겨운 일입니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부류인 (클래식)작곡가, 편곡가, 연주가,
저술가 등등이 평생을 무임금으로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노동을 자신들보다는 훨씬 잘 사는 부류에게
그냥 헌납하는, 유노동 무임금으로 일관하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감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복사나 복제를 하는 것이 늘 구매자에게 금전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제 희귀본으로 대접 받고 있는
한글 번역판 「아벨·깔레바로(Abel Carlevaro)의 기타연주법」과
「기타교범」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 복사물을 소장하고 있는 친구들은
지금쯤은 대개 출간 당시에 책을 사 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알함브라의 회상과 트레몰로 주법의 비밀」이나 
「악상 해석...」을 비롯하여, 앞으로 소생이 계속해서 출간하게 될
책들 역시 그럴 것입니다. 대개는 음악사(音樂史)상 최초에 해당하는
내용을 싣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판되지 않고 판을 거듭하게 될지라도
책을 소장하신 분들께는 세월의 무게가 주는 가치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해 드릴 것입니다. 좋은 책은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하지만,
그 복사물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경우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저작권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의식이 희박한지라,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은 없는 이들이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그 자체가 힘겨운 이들 극빈 노동계층(음악가들)의 힘겨운 노동의 댓가인,
그나마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거리낌 없이 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내의 (클래식 음악)작곡가, 편곡가, 연주가, 저술가 등등은
반드시 멀티잡(multi-job)족이 되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작곡에 열중해야 하고, 머리를 싸매고 편곡에 임해야 하고,
CD 녹음이나 무대 연주를 위해 피를 말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방대한 악보를 분석하고 갖가지 이론을 연구하며 글을 써야 하는 시간에
이들은 레슨을 해야 하거나, 
술집에서 (클래식 음악도 아닌, 대중 취향의 음악을) 연주해야 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주유소에서 주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거나,
또는 음식점에서 써빙을 하거나 철가방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좀더 잘 살기 위한 멀티잡족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을 위한 멀티잡족인
것입니다. 악보를 팔고 CD를 팔고 연주만을 해서는 최저 생계비조차도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집필하는 데 사용하던 제 컴퓨터가 고장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소생은 아직도 아이들 컴퓨터를 눈치 봐 가며 빌려 쓰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컴퓨터를 다 쓰고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까스로 틈을 얻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소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제
알아 주는 음악 분야의 베스트 셀러 저술가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어찌 창의적이고 집요한 노력을
요구하고, 또한 그 노력의 결산인 음악적 자산을 축적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것을 다그치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음악 교육의 대외 의존성을 문제 삼거나 음악적 자산 축적의 미흡함을
문제 삼아 이 사회가 어찌 국내 음악가들을 나무라거나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과 정열을 집요하게 한 곳에 쏟아붓는 노력이
없이는 세계적 일류가 되기를 바랄 수도 없음이 자명합니다.

아무리 작곡을 해 봐야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일에만 
모든 노력과 정열을 다 쏟아부으며 그 일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편곡을 해도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일에만 모든 노력과 정열을 다 쏟아부으며 그 일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한다 한들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일에만 모든 노력과 정열을 다 쏟아부으며 그 일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하나가 하나를 낳고 그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낳은 고리들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음에까지 생각이 닿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그 누구도 그 누구를 비난할 수 없는,
해법도 없고 결론도 없는 사념(思念)의 유희(遊戱)일 따름입니다.  
이 세상의 한낱 미물조차도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니...

어쨌거나,
다른 음악인들께서도 각자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그러하시겠지만,
소생 역시 소생이 저술하는 책 한 권 한 권이, 감히, 반드시 세계 제1의
내용을 가진 책이 되도록 죽을 힘을 다해 그 한 자 한 자를 채워 나갑니다.
그것을 위해 제 작고 말랑말랑한 뇌를 어제도 오늘도
무지막지하게 맷돌에 갈아댑니다. 
방대한 악보를 분석하고, 수많은 문헌들을 뒤지고, 갖가지 실험을 되풀이
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소생이 쓴 책을 읽고 연구한 후배들이, 해당 내용에 관한 한 기필코
세계 제1의 대외 경쟁력을 갖게 되기를 소원하면서.

이상, 소생이 잔메 기슭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저술작업에만 전념하게 된 까닭을 생각나는 대로 주섬주섬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책을 쓰며 세월을 보내기로 한 것이
그리 늘 푼수 있는 선택이 못 됨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마음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풍요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적어도 한 사람의 국내 음악가로서의 자존심만은 세우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국내 음악인들이 제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분투 노력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국내 뭇 사람들도 점차 극빈계층의 노동의 산물인 저작권이란 것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하기 시작했으므로, 점차 사정이 나아져서  
머잖아 반드시 그리될 것이라 믿습니다. 

(Off-Line 상으로는) 대외 접촉이 거의 없이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소생의 일상이어서,
소생은 제 책을 읽은 친구들의 견해가 늘 궁금합니다.
저술 작업과 관련하여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되므로,
소생은 집필에서부터 악보 사식, 그래픽, 교정, 교열 등, 인쇄 과정만을
제외한 그 모든 작업을 언제나 혼자서 개발새발 해 나갑니다. 
그래서, 제가 쓴 내용들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더욱 의구심이 나고 궁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책을 읽으신 분들이 게시판 등에 간략한 서평 같은 것이라도 올려
주신다면, 소생에게는 크게 참고가 될 것입니다.
소생에게 채찍이 되어 줄 진솔한 서평(feedback)을 원합니다.  

소생은 간혹 소생의 내부 깊숙히 잠재되어 있는 식인(食人) 본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청바지의 재봉선이 얼마나 튼튼한 것인지를
실감나게 하는, 미쉐린 타이어맨 스타일의 처자(處子)들을 볼 때면
그렇습니다. 죄송~~~,    ^_________^

        

행여나 하는 노파심에서 확실히 해 두고자 합니다만,
프로이드가 말하는 성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먼 옛날 태고적의,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로의 멀고 먼 거주 이전을 감행했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猿人類)로부터 대물림되어 왔을 법한
원초적 식인 본능입니다(아니라면,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인감?).
그러므로,
요즈음 유행(?)하는 '성추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발언이라는...흐~
근데,
인터넷 서점의 서평난에 책을 읽은 후의 솔직한 소감을 적어 주는 사람은
절대로 안 잡아 먹쥐~~~ㅇ !!!
              

어둠이 내린 뒤의 잔메 숲은 늘 고요합니다.
해서, 오히려 은근한 인기척을 감지하게 됩니다. 
저 어두운 숲 속에 음악을 사랑하는 여러 친구들의 눈동자가
여기저기서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합니다.

화톳불의 따스한 온기와 함께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06년 3월 잔메에서 신현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