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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page ~ 20 page. ※ 8 ~ 12 page는 '차례'이며, 13,14 page는 내용 없음.

악상과 음악 어법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악보를 읽어 나가는 것조차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 밖의 것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웬만큼 시간이 경과하여 악보와 악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악상 해석과 표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란 악보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인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타이핑(typing)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릅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도 모르는 채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테크닉에 앞서 곡의 해석과 표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악상 해석과 표현이란 초보 때부터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연주의 기본입니다. 흔히, 우리 친구들은 곡의 해석과 표현에 대한 것보다는 테크닉에 먼저 집착하는 성급함을 보이곤 합니다만, 테크닉이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테크닉이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음악이 테크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상 해석과 표현에 정성을 다하는 식의 연습은 테크닉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악상의 진면목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손가락 근육의 다양하고 미묘한 운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운동 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예민하게 근육을 단련해야 합니다). 반면, 악상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면 손가락 동작이 그만큼 무디고 단순해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테크닉과는 거리가 먼 연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악상에 대하여 무관심한 태도'란 부단한 노력과 오랜 경력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변변치 못한 기량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고질병으로 작용할 것임이 불문가지입니다.

 자신이 연주할 곡을 스스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면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앵무새가 되는 것. 앵무새는 자신이 하는 말의 뜻도 모르는 채 단지 조건반사적으로 지껄이고 있을 뿐입니다. 유명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베끼듯, 다른 연주가들의 음반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를 진정 '연주'라 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것이 '연주'일 수 있다면, 이웃집 페인트공이 그려 놓은 모나리자의 모사품에 대해서도 당연히 '작품'이라 해야겠지요. 속이 빈 겉멋을 부려 본들 무엇 하겠습니까.

 물론, 학습 과정 중에는 대가의 연주를 그대로 흉내 내어 보는 연습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미학적 시각의 깊이와 폭을 더하고, 다양하고 차원 높은 표현 기법들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학습의 한 과정에 국한되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실제 무대에서 그러한 모방 연주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성 연주가의 음반을 그대로 흉내 내는 연주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본보다 더 잘 그려진 모사품일지라도 그것이 모사품인 이상 정상적인 작품으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음악적 해석에 다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연주자 자신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연주가 훨씬 듣기 좋습니다.

 또한 우리 친구들은 재빠른 손가락 놀림만을 테크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과연 테크닉이란 그런 것일까요? 화려한 손가락 놀림을 과시하는 연주가보다는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음색과 섬세하고 풍부한 표정을 들려주는 연주가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현란한 손가락 놀림에 잠깐씩 열광하곤 하지만, 그러한 열광이란 대개 일과성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쉬 싫증 내지 않고 오래오래 듣게 되는 것은, 비록 압도하는 현란한 손가락 놀림은 없을지라도 아름다운 음색과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하는 개성이 뚜렷한 연주입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스피드를 자랑하는 손가락 재주보다는 정교한 터치와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음색과 섬세하고 풍부한 표정을 그려낼 수 있는 기법이 보다 중요한 테크닉임이 분명합니다. (스피드가 테크닉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음악을 위해 사용될 때에만 그렇습니다.)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음색'이란 터치와 손가락 동작의 메커니즘 등에 대한 남다른 연구와 꾸준한 연습 그리고 악기의 특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겠으나,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악상과 결부되어야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 또한 악상 해석과 표현에 대한 세심한 연구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악상 해석과 표현, 이것이 진정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타자기나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행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악상(樂想)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곡의 주제나 구성 그리고 양식(樣式) 등, 작곡에 관한 작곡가의 착상(着想)」정도로 요약됩니다. 쉽게 말해서 작곡가가 생각 속에 담았던 곡의 실체, 즉 작곡가가 의도했던, 소리로 된 곡의 실재(實在)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데, 가령 그림을 대할 때 굳이 화가의 착상을 해석해 가며 감상해야 한다면 그것은 기이한 일일 것입니다. 보는 바 그대로 느끼면 될 일인데. 물론, 미학적 지식과 심미안에 따라 그 느낌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악보를 보고 악상을 해석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림은 그 자체가 화가가 착상했던 바를 그대로 표현한 최종의 결과물이나, 악보는 작곡가가 착상했던 바 그대로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연주가의 수고를 거쳐야 비로소 소리로 표현된 그 최종 결과물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악보란 단지 작곡가의 착상(악상)을 대략적으로 그려 놓은 밑그림(sketch)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주가는 작곡가의 악상 자체를 들어 볼 수는 없으며, 애오라지 그 밑그림(악보)을 보고 그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밑그림을 보고 그 완성된 결과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작업, 이를 두고 악상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며, 연주자는 이 작업을 결코 생략할 수 없습니다. 작곡가가 직접 자신의 곡을 연주하여 CD나 mp3 파일로 만들고 그것을 악보와 함께 제공하지 않는 한. 연주된 곡(악상)이야 그림과 마찬가지로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악보는 명백히 그것으로부터 악상을 해석해 내야 하는 음악의 설계도이자 밑그림일 뿐입니다.

 음악을 디지털 부호로 바꾸어 기록하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되는 사실이 말해 주듯, 음악의 실체가 가진 ‘소리 정보’는 참으로 방대한 양에 달합니다(☞ p.213, 참고: 디지털화한 음악의 정보량). 그러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불과 몇 장의 악보에다 그대로 적어 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악보란 그야말로 작곡가의 착상 중 극히 중요한 뼈대만을 가까스로 적어 놓은 암호문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읽어서 거꾸로 작곡가의 착상(악상), 즉 작곡가가 구상했던 곡의 실체를 해석해 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작곡가의 악상 그대로를 해석해 내는 것이야 불가능한 일이지만, 연주자는 최대한 그 실체에 다가가려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상이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성격의 것이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객관적인 면(공감대) 또한 가집니다, 말투나 말씨가 그러하듯.

 말하는 법 ― 어법(語法, diction) ― 은 말하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책에서의 '어법'이란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야 어떠하든, 말투나 말씨를 포함하여 발음기관을 울려서 말하는 방법의 모든 것을 뜻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합니다). 천 명의 배우가 동일한 하나의 대사를 두고 말한다 할지라도 배우마다 그 말하는 방법, 즉 어법이 달라서 그 결과는 제각각이 되고 맙니다. 어법이란 것이 법령이나 공식을 쫓아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능적 감각, 대물림(학습), 관습과 주위 환경, 그리고 각자의 자질 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언어권일지라도 지역이 다르면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시대가 다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예가 더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특정 시대 특정 지역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정인의 어법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시대에 그 곳에서 그 사람과 함께 살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편, 동일한 대사일지라도 그것을 말하는 배우에 따라 청중이 감동하는 정도가 다르고, 심지어는 동일한 대사를 동일한 배우가 말하는 것일지라도 공연할 때마다 청중의 반응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또한, 대사가 어법에 걸맞지 않을 때는 청중의 빈축을 사기도 합니다. 말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 나타내고자 하는 뜻과 감정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말이 '말하는 법'에 맞게 말하여지고 말씨에 말하는 이의 감정을 담아 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어법(語法)'에 준하여 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 배우가 말하는 대사의 어법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인 평가를 하게 되는 현상은, 어법에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공감대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이를테면,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는 조사(弔辭)를 기쁨에 겨운 말투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는 회한(悔恨)에 젖은 독백은 낮은 음조로 천천히 뇌까리는 것이 제격입니다.

 어법을 구성하는 요소 중, 다음의 몇 가지는 음악에도 그에 상응하는 표현법이 있으며, 그러한 요소들의 일반적 속성(屬性)이 법령이나 공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통해 관습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특징 또한 말과 음악이 서로 공통됩니다.

 그 몇 가지 요소란 첫째, 말이나 문장에 있어서의 숨쉬고, 끊어 읽고, 단어나 음절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등의 어법. 음악에서의 프레이징(phrasing)과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그에 상응하는 표현법입니다. 둘째, 말에 강약의 변화를 주는 어법. 음악에서의 뒤나믹(Dynamik, 강약법)이 그에 상응하는 표현법입니다. 셋째, 말의 속도에 변화를 주는 어법. 음악에서의 아고긱(Agogik, 속도법)이 그에 상응하는 표현법입니다. (※ ☞ 아래, 참고: 뒤나믹, 참고: 아고긱)

<※ Dynamik과 Agogik은 독일어로 된 음악용어입니다. 영어로는 각기 Dynamics, Agogics라 합니다.>

 이와 같이 음악에도 말의 어법에 상응하는 표현법이 있으며, 그 일반적 속성 역시 말의 경우와 매우 흡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언어와 음악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언어와 음악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공통되거나 유사한 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앞으로 관련 내용과 연계하여 거듭 거론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어법(語法, diction)'이라는 말에 상응하는 개념의, 음악에 있어서의 어법이라는 의미로 '음악 어법(musical diction)'이라는 용어를 정하여 사용하기로 합니다. 기존 음악 용어로서의 ‘딕션(diction)’ 또는 ‘뮤지컬 딕션(musical diction)’이란 성악에 있어서의 ‘가사 발성법'을 뜻합니다만, 그와는 전혀 별개의 의미를 가진 말로 정하여 사용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뒤나믹과 아고긱. 이들은 말을 말답게 하듯 노래를 노래답게 하는, 또는 음악을 음악답게 하는, 음악에 있어서의 '어법(語法)'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그러므로, 「악상 해석과 표현의 기초」란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의 일반적 속성을 이해하고 익히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음악적 공감대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데, 이 중에서 아고긱은 (연주에 의해 예를 들어 보이는 바 없이) 말과 글 그리고 악보만으로 설명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보다 상급의 과정에서 익히는 것이 바람직한 면도 있어서 제외하기로 하고 이 책에서는 그 나머지 요소들과 악상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아고긱에 대해서는 기성 연주가들의 연주를 모범으로 하여 익히는 것이 다른 대안이 없는 거의 유일한 학습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음반이나 연주를 막연하게 듣는다 해서 그 구체적인 기법과 내막이 절로 드러날 리도 없거니와, 따라서 깊이 있는 그리고 세세한 통찰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뒤나믹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음악 어법의 근본 이치를 알고 난 다음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속에 표현되고 있는 아고긱의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그 형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참고: 뒤나믹(Dynamik) ☜ p.18

        ‘뒤나믹’이란 강약의 변화에 의해 곡의 표정을 나타내는 표현법으로서, 우리말로는 ‘강약법(强弱法)’이라고 합니다. 또는, 음악의 흐름에 수반하는 강약 변화의 추이(推移) 그 자체를 ‘뒤나믹’이라 하기도 합니다. 뒤나믹을 표시하는 데는, , , , , , 크레센도(crescendo, ), 데크레센도(decrescendo, ) 등, 셈여림의 정도나 변화를 의미하는 기호나 악상 지시어가 사용됩니다. 뒤나믹은 아고긱(Agogik, 속도법)과 함께 음악의 표정을 나타내는 중요한 음악 어법의 하나입니다. 제207페이지 <뒤나믹>의 장에서 자세히 다루게 됩니다.

 

참고: 아고긱(Agogik) ☜ p.18, 140

        메트로놈(metronome)과 같이 기계적으로 정확하고 균일한 박(拍, beat)은 사람이 느끼기에는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합니다. 이를 두고, 사람의 생체적 리듬이란 그때그때 기분이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 박동 수가 달라지는 심장의 박동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박과 맞지 않는 것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비인간적인 기계적인 박을 지양(止揚)하고 보다 인간적이고 흥과 멋으로 살아 숨쉬는 리듬이 되도록 흔히 음가(音價) 또는 연주 속도에 미묘한 변화를 주는 수법이 사용되곤 하는데 이를 아고긱이라 합니다.

<※ 음가(音價, note value)란 음표나 쉼표의 길이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4분음표는 온음표의 1/4, 8분음표는 1/8 해당하는 음가를 갖습니다.>

   템포·루바토(tempo rubato ☞ p.137, 참고: 템포·루바토)는 대표적인 아고긱 기법의 하나이며, 랄렌탄도(rallentando), 아첼레란도(accelerando), 리타르단도(ritardando), 페르마타(fermata) 등도 아고긱의 기법에 속합니다. 아고긱은 단지 리듬에 흥과 멋을 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악상의 다양한 뉘앙스를 그려 내고, 아티큘레이션이나 프레이징을 표현하는 기법들과도 관련성을 가지는 음악 어법의 하나로 사용됩니다.

   아고긱적인 표현은 음악의 발생과 그 기원을 같이하는 것이겠으나, '아고긱'이란 용어 자체는 후고·리만(Hugo Riemann ☞ p.78, 참고: 리만)이 창안했으며, 뒤나믹(Dynamik)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써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뒤나믹이 강약에 변화를 주는 '강약법'이라면 아고긱은 속도에 변화를 주는 '속도법'으로 번역됩니다.

         아고긱을 자유롭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확고한 리듬 감각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특히 템포·루바토를 구사할 때에는 기계적으로 정확한 박을 따로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템포·루바토란 템포·루바토가 아닌, 리듬의 불안정과 혼란만 초래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리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초보 과정에서 곡을 연습할 때 박자를 세는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확고한 리듬 감각이 형성된 이후에는 따로 박자를 세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정확한 리듬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곡을 작곡가의 착상 100%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작곡가 자신의 대체적인 음악 어법을 안다면 작곡가의 착상에 최대한 근접할 수는 있습니다. 또는 작곡가 자신의 음악 어법까지는 모른다 해도,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의 일반적 음악 어법을 안다면 거기에 웬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흐를 바흐답게 연주하려 한다면 응당 그와 같은 음악 어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만일, 작곡가 자신의 음악 어법을 알지도 못하고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의 일반적 음악 어법 역시 모른다 해도 최소한 가장 보편적으로 통하는 음악 어법을 적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음악 어법의 기본적인 속성조차 모르는 채 기계적으로 악기를 타이핑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음악 어법의 기본 요소들과 그 일반적 속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를 통해 악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악상 해석과 표현」은 사실상 음악에 대한 모든 지식과 이론과 기법은 물론이거니와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 등 연주자 자신이 가진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행해야 하는 것이지만, 항상 그 기본이 되고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음악 어법(musical dictio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