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신현수 2005 - 2006, all right reserved. 문서에 의한 필자의 허락 없이 이 글의 전부나 일부를 다른 곳에 게재하거나 이용할 수 없습니다.

 

 

23 page ~ 26 page.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참고: 동음 간의 이음줄 ☜ p.103

    아래 악보1에서 볼 수 있는  나   와 같이 이음줄(slur) 아래에 스타카토 점이 표시된 기호를 메조·스타카토(mezzo staccato ☞ p.71)라고 합니다.

    음높이가 같은 음, 즉 동음(同音) 둘을 완전무결하게 레가토로 이어 연주하면 두 개의 음으로 들리지 않고 음가(音價)가 두 배인 하나의 음으로 들리게 됩니다. 이는 동음 간을 이음줄(slur)로 연결하면 이음줄이 아닌 붙임줄(tie)이 되는 기보법의 이치와 일치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동음 간을 (붙임줄이 아닌) 이음줄로 연결하고자 할 때에는 이와 같이 메조·스타카토를 적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여러 음들을 이음줄로 연결하면서 그 내부에 연속되는 동음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행여 그것이 붙임줄인 양 보일 염려가 없는 한, 굳이 스타카토 점을 찍어 메조·스타카토임을 표시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 또한 기보상의 관습입니다

 

 악보1은 「바이어(Beyer, ※ 국내에서는 흔히 '바이엘'로 통함) 피아노 교본」의 제19번 곡입니다. 악보 중에는 이와 같이 슬러(slur) 또는 이음줄이라고 하는 호선(弧線, a curved line)이 많이 그려져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이음줄들은 이음줄로 연결한 음들을 레가토(legato)로 잘 이어 연주하라는 표시입니다. 즉, 이음줄로 연결된 '일련의 음들(= 음렬p.26, 참고: 음렬)'을 레가토로 이어서 연주하고 이음줄이 끝나는 곳의 음은 적절하게 끊습니다 ― 흔히 가볍게 끊습니다. 관악기 연주자가 텅깅(tonguing ☞ p.26, 참고: 텅깅)을 하거나 숨을 쉴 때처럼, 또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의 방향을 바꾸거나 활을 선에서 떼어 낼 때처럼 그렇게 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음줄이 끝나는 곳의 음을 어떻게 끊느냐 하는 점보다는 레가토로 연결된 음렬(音列)이 한 번의 호흡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도록, 또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한 활로 그어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도록, 그들을 결속시키는 데 더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이음줄 끝의 음을 끊는 것은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음줄은 이음줄로 연결된 음들을 레가토로 연주함으로써 그들을 한 묶음 또는 한 그룹(group)으로 들리도록 하라는 표시인 것입니다.   (※ ☞ p.75, 참고: 악기에 따른 레가토의 차이).

          악보1. 레가토 이음줄 ― 바이어 피아노 교본, 연습곡 제19번

 

   ※ 아래 글의 내용 중,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점차 자세히 설명하게 되므로, 이들 용어의 뜻을 잘 모른다 해서 당황스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함으로써 ― 일련의 음들을 그룹으로 묶음으로써 ― 이들 이음줄은 프레이징(phrasing)이나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악기에 따라서는 악보에서 이와 같은 이음줄을 찾아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타(guitar) 악보가 그렇습니다. 기타 악보에는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 전무(全無)하다시피 합니다. 한데, 그 이유를 기타 특유의 「슬러 주법」에 대한 기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그 이유의 전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려고만 든다면, 「슬러 주법」을 의미하는 이음줄을 점선으로 한다든지 하여 혼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강구(講究)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타는 앞서 연주한 음의 여운에 왼손 운지 동작에 의한 울림을 더해 다음 음을 소리 내는 특유의 「슬러 주법」이라는 연주법이 있습니다.).

 

   이음줄(slur)은 현악기나 관악기 등의 「슬러 주법」을 표시하는 기호이기도 하며, 보다 범용(汎用)적으로는 레가토로 연주할 것을 나타내는 기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루핑(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을 주목적으로 하여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루핑이란 일련의 음들을 묶어서 그룹화하는 것을 뜻하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항에서 설명됩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는 기존 악보를 재해석하여 프레이징 및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나 그 밖의 악상 기호 등을 상세하게 붙여 출판하는 풍조가 성행했었습니다. 그러한 악보를 원전판(原典版)에 대응하는 말로 해석판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당시 기타 음악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고 있던 터여서 다행히(?) 그러한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행히」라고 한 까닭은 해석판 악보가 유익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곡가가 표시해 놓은 얼마 되지 않는 아티큘레이션의 기호쯤은 무시해 버리고 교정·편집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이음줄을 그려 놓은 것이 부지기수여서, 이후 애써 원전판 악보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 전문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음악에 대한 내밀한 식견과 미학적 감각을 악기 연주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까지도 널리 공유할 수 있게 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면 또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대개의 기존 악보(원전판)에는 악상 기호라고는 표시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기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문에, 음악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던 일반 대중이 연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의 혜택으로 부(富)를 축적하게 되자 생활에 여유가 생겨 취미를 찾게 된 다수의 신흥 부유층이 악보 출판업자들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했으므로 해석판 악보의 등장은 사필귀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의무교육인 양 받고 자라 음악적 교양이 풍부했던 귀족층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기존 원전판 악보에 일반적으로 (다른 악상 기호는 물론이거니와)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이음줄이 희박했던 이유란 이처럼 기존 악보의 주 구매층이었던 당시의 귀족들이 전문가적인 음악적 식견을 상식(常識, common sense)으로 하고 있어서 스스로 해석하여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표시하는 데 인색했다기보다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위한 이음줄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원전판 악보나 또는 기타(guitar)와 같은 악기의 악보라 해서 ― 해석판 악보 역시 그 해석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사정이 더 나을 것은 없습니다만 ―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무시하고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은 문장에 있어서의 구두점이나 끊어읽기, 또는 절 구 단어 음절 등을 구분하거나 운율을 표현하는 등의 어법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중국어나 일본어라 해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문장을 (지난 20세기의 텔레비전 아동극에 단골로 등장하곤 했었던) 진화가 덜된 깡통 로봇의 말투로「삐리! 삐리! ~~~ 아··········다」라고 아예 단어 구별조차 하지 않고 읽거나, 또는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 !」는 식으로 틀리게 끊어서 읽지는 않습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해도 문맥(context)에 의해 단어나 구문적 구조 그리고 운율 등에 대한 식별이 능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의미하는 이음줄들이 그려져 있지 않다 해도 곡의 문맥에 의해 연주자 스스로 그것을 해석해 낼 수 있으며 또한 당연히 그리해야 합니다.

 연주자 스스로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해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해서 그것을 (해석판 악보를 사용하는 상황에 비해) 딱히 불리한 여건으로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연주자라면 어차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필히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에 대한 해석이 되어 있는 ― 이음줄이 그려져 있는 ― 악보라 해도 그것이 작곡가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닌 한, 그와 같은 해석은 단지 참고 사항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티큘레이션은 연주자에 따라 다양하게 달리할 여지가 다분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아티큘레이션에 비해 프레이징에 대한 해석은 견해를 달리할 여지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음줄의 모양만으로는 그것이 프레이징을 나타내는 것인지 아티큘레이션을 나타내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끊어읽기나 억양(intonation)까지 일일이 표시되어 있는 연극 대본은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대본을, 깡통 로봇이 책 읽듯 읽는 것이 아니라, 실감나게 말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대사일지라도 배우마다 대사를 말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 끊어읽기, 억양, 말투, 말씨가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툰 배우의 잘못된 대사가 아닌 다음에야 관객이 그것을 못 알아듣거나 곡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음악에 있어서의 아티큘레이션 역시 그와 같은 성격의 것이라 하겠습니다.

 

고: 텅깅(tonguing) ☜ p.23, 158

        관악기를 연주할 때 혀를 이용하여 취구(吹口)를 막아 공기의 흐름을 차단, 음을 끊는 기법을 말합니다.

 

참고: 음렬(音列) ☜ p.23

        이 책에서는 음렬(音列)이라는 말을 별 뜻 없이 「음의 열(列) 또는 흐름(a stream of notes)」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음악 전문 용어로서의, 일정한 체계를 가진 음의 계열을 의미하는 '음렬(音列, Tonreihe, tone row)'이나 '음렬작법(Reihentechnik)'에서의 '음렬(音列, serie, row)'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