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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큘레이션의 유래

 

 이미 언급한 바 있듯 음악은 언어, 즉 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詩)와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음악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 말(가사, 시) → 성악곡 → 기악곡 >으로 연결되는 연관성은 누구든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웅이나 전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사시나 연애 감정을 담은 서정시 그리고 신을 숭배하고 예배하는 찬양의 시 등을 노래한 것이 성악곡의 기원이며, 악기란 오랜 세기(世紀)를 노래 반주용 도구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던 터이며, 그런 연후에야 점차 그 기능과 연주법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게 되어 본격적인 기악곡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기악곡조차도 말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겠습니다.

 언어와 성악곡 그리고 기악곡. 이들의 관계란…… 언어(가사)와 음악적 영감을 결합하여 만드는 것이 성악곡이라면, 성악곡이라는 원료 또는 재료를 이리저리 가공하여 만든 레고 블록(LEGO block)으로 조립하여 만드는 것이 기악곡이 아닐는지. 인간이 태어나서 요람에서부터 먼저 배우는 것은 (기악이 아니라) 말과 노래입니다. 물론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도 그랬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국어의 발음 현상에 길들여진 소리에 대한 감각을 제2의 천성(天性)으로 하여 작곡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제2의 천성을 가진 연주가들이 그것을 연주하고 관객은 듣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언어가 다르면 음악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인과 관계가 성립합니다. 특히, 운율이나 구문법(構文法, sentence structure)적 구조 등을 반영하는 음악 어법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서양음악의 아티큘레이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서양 언어의 아티큘레이션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의 아티큘레이션은 언어의 아티큘레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어쩌면 언어의 아티큘레이션으로부터 유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티큘레이션’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가 말(언어)의 발음 현상과 관련이 있음(☞ p.70)을 단지 우연으로 돌릴 일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서양의 대표적 언어 중 하나인 영어를 말할 때의 아티큘레이션, 즉 분절(分節, 그루핑)이나 유절(有節, 음을 끊어 소리 내는) 발음 현상은

첫째, 악센트와 관련한 운율적인 것과

둘째, 단어 구 절 등의 구문법적인 구조를 나타내는 것,

셋째, 감정이나 그 밖의 표현적 욕구 등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티큘레이션의 세 가지 유형(類型)

 

 「The book is on the desk.」라는, 영어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을 법한 이 영어 문장을 말할 때, 지난 세기의 아동극에나 등장하던 원시 깡통 로봇이 아닌 한 여섯 개의 단어를 각기 구분하여 ― 아티큘레이션으로 끊어서 ― 말하지는 않습니다. 원어민(native speaker)의 말하는 품새를 들어 보면·····,

'The book'은 'The-Book()'으로 그리고 'on the desk' 역시 'on-the-Desk( 또는 좀더 부드럽게 혀를 굴려 )'로, 마치 악센트가 'book'이나 'desk'라는 음절에 있는 하나의 단어인 것처럼 붙여서 말합니다. 그리고 'is'는 약화되어 거의 발음하지도 않을 정도가 되어 「'The-Book-is', 'on-the-Desk'」의 두 합성(?) 단어, 즉 두 마디(articulation)만을 말하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단어 간의 연결 발음에 있어서는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 쪽에 강세가 주어집니다. ☞ p.88, 참고: 영어 단어의 품사별 강세). 이는 강세가 없는 단어들을 강세가 있는 단어에 연결, 하나로 그루핑함으로써 운율을 조성(組成, makeup)하여 발음하는 운율적 아티큘레이션의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문장을 「The book is」라는 '주어 + 동사' 부분과 「on the desk」라는 전치사구(prepositional phrase)로 양분하여 구분하는 구문적 아티큘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전화의 감도가 좋지 않아서 듣는 사람이 「Where?」라고 자꾸 되묻는다면, 「」라고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서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표현적 아티큘레이션의 일종이라고 하겠습니다.

 서양 언어가 가진 이와 같은 아티큘레이션의 특성은 서양음악에 그대로 유전(遺傳)되고 있습니다. 악센트가 없는 박(拍, beat)의 음(들)을 악센트를 가진 박의 음에 연결하여 그루핑하는 성향이 바로 그것(운율적 아티큘레이션)이며, 동기나 동기적 음형 그리고 섹션(section, 프레이즈를 반분하는 악구 ☞ p.125, 참고: 섹션) 등을 분절(分節)하는 그루핑이 또한 바로 그것(구문적 아티큘레이션)입니다. 일련의 음을 스타카토로 강조하여 연주한다면 그것은 표현적 아티큘레이션에 해당합니다. 음악과 언어의 아티큘레이션은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사실들이라 하겠습니다. 당연히 서양음악에서의 아티큘레이션 역시 언어에서와 같이 운율적 아티큘레이션(metrical articulation 또는 foot-style articulation ※ ☞ p.83, 표1), 구문적 아티큘레이션(sentence-structural articulation), 표현적 아티큘레이션(expressive articulation)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티큘레이션이 이와 같이 그 성격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비해 프레이징은 오로지 구문적 그루핑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