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상 해석과 표현의 기초: 책 머리에

84 page ~ 89 page.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 말은 셰익스피어(1564 ~ 1616)의 햄릿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단음절의 단어들이 연결될 때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에 악센트가 가해지기 마련. 따라서 이 문장은 약강격의 아이앰(iamb)을 바탕으로 하는 여린내기(☞ p.88, 참고: 여린내기와 센내기)의 운율임을 알 수 있습니다(보기2). 중간에 강약격인 센내기의 음보 트로키(trochee)가 하나 포함되어 있긴 합니다만 ― 이처럼 부분적으로 강약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을 전도(inversion)라 합니다.

보기2. 음보 ― 아이앰(iamb), 트로키(trochee)

　영시의 낭송을 들을 때 또는 일반 영어 문장의 낭독을 들을 때 마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음악과 언어의 공통점(리듬, 운율) 때문입니다. 사실, 영시나 일반 영어 문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음보는 여린내기 성향의 음보들입니다. 즉, 약강격인 아이앰(iamb)과 약약강격인 아나페스트(anapest, 보기3), 약강약격인 앰피브랰(amphibrach)등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영어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이와 같은 운율을 이해하는 것이, 비서양인이 영어 듣기와 말하기를 수월하게 익힐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영시의 경우,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온 여린내기의 운율에 비해 센내기를 위주로 하는 운율의 시는 근세(19세기 이후)에 와서야 비로소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양음악에서의 리듬 패턴 역시 여린내기가 주류를 이루기는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Byron의 시 'The Destruction of Sennacherib' 중에서

보기3. 음보 ― 아나페스트(anapest)

　이와 같은 여린내기의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음운학적 특성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인도유럽 어족)의 문장 구조는 익히 알다시피 <주어(S) + 동사(V)>가 기본입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주어 + 동사···’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흔히 주어로 사용되는 대명사나 명사로 말할 것 같으면, 대명사에는 대체로 강세가 주어지지 않으며, 명사에는 없어도 말이 되는 ― 강세가 없는 ― 관사가 덧붙여집니다. 구나 절이 주어가 될 때에는 아예 가주어로 대체하곤 합니다. 구나 절 역시 강세가 없이 시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구는 전치사로, 절은 접속사로 시작되기 마련인데, 전치사나 접속사를 힘주어 발음하는 경우란 희박하므로. 뿐만 아니라, 단어조차도 악센트가 뒤 음절에 있는 예가 흔합니다. 따라서 문장을 시작하는 음절에 악센트를 붙일 수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서양음악의 상박(上拍, 여린박)은 이를테면 노랫말 중의 관사 전치사 가주어 또는 악센트가 뒤 음절에 있는 단어와 같은 존재로부터 유래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음악의 상박에 있어서는 언어의 관사처럼 거의 발음하지 않아도 무방할 정도로 미약한 성격의 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린내기의 운율에서 앞에 위치하는 약음절이나 상박(여린박)의 음은 뒤에 오는 강음절이나 하박(센박)의 음으로 발성이나 발음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동적(動的) 성향을 가집니다만, 상박(음악)의 그 동적 성향은 약음절(언어)의 그것에 비해 보다 한결같습니다(※ ☞ p.263, 참고: 운율적 악센트와 물리적 악센트). 음악에 있어서의 상박은 상박으로서의 자존을 잃는 일은 없는 존재라 하겠습니다. 언어와 음악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지만, 그 장르(genre)가 다른 만큼 나름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서양 언어의 악센트에 해당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말에도 고저의 변화는 있지만, 서양 언어와 같이 특정 음절을 강하게 발음하는 악센트는 없으며, 또한 특정 음절을 길게 늘이는 일도 없습니다. 모든 음절을 균등한 길이로 발음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의 운율이 글자수에 의한 음수율(音數律)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음악에 내재하는 리듬 역시 우리 말의 운율과 마찬가지의 특성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에 내재하는 운율(韻律)과 억양에 있어서의 차이를 잠깐 비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책은 책상 위에 있다네~.」라는 한 줄의 가사를 가지고 작곡을 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를 영어로 옮기면, 이미 앞에서 한 번 써먹은 바 있는 「The book is on the desk~.」정도가 되겠지요(뼈다귀 하나를 가지고 국물을 자꾸 우려먹는 듯해서 죄송~ ). 강조 구문을 써서 「It is the book that is on the desk~.」로 옮길 수도 있겠습니다. !!!

보기4. 영어 가사의 운율과 억양에 맞춘 노래의 리듬 구성

　보기4는 가사의 악센트 구조(운율)와 곡의 리듬 구성이 잘 부합되는 예입니다. 강조되어야 할 'book'과 'desk'라는 단어가 센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사의 악센트 구조가 여린내기로 작곡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강조하여 발음할 이유가 없는 'The', 'is', 'It', 'that'와 같은 단어가 센박에 위치하도록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가사로 시작하는 곡이라면 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갖춘마디로 작곡하려 한다면 보기5가 그 한 예가 되겠습니다만, 'The', 'is', 'the'가 센박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얄궂기 짝이 없습니다(※ 4/4박은 '강·약·중강·약'의 리듬이므로 제3박도 센박에 해당합니다 ☞ p.104, 참고: 박의 분할과 겹박자).

보기5. 갖춘마디의, 영어 가사의 운율과 억양에 전혀 맞지 않는 리듬 구성

　그에 비해, 우리말 가사로 작곡할 경우에는 갖춘마디(센내기)로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보기6). 의미상 중요한 단어인 '책'과 '책상'이 잘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못갖춘마디로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의미상 중요한 단어가 문장의 첫머리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말은 체질적으로 센내기가 어울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기6. 한국어 가사의 억양에 맞춘 리듬 구성

　서양의 가곡집 ― 이를테면 슈베르트 가곡집 ―과 한국의 가곡집을 비교해 보면 금방 눈에 띄는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 가곡집에서는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곡을 찾아보기 어려운 데 비해 슈베르트 가곡집에는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곡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서양음악의 기악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못갖춘마디로 시작하거나, 설사 갖춘마디로 시작하더라도 이후의 악구(section 또는 phrase)가 여린내기적인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이를테면, 「카르카시 기타 교본」 제1부에는 22곡의 과제곡이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20곡이 못갖춘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서양의 언어와 서양음악은 여린내기적인, 한국어와 한국음악은 센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린내기란 서양 언어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럽고 듣기 좋은 말투이며 관습적이고 체질적인 어감(語感)입니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서양 언어와 음악의 여린내기적 성향은 우리의 음운학적, 음악적 감각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 어법이 우리와는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서양음악에 있어서의 프레이징 및 아티큘레이션에 대한 감각이 우리 음악에 있어서의 그것과 다름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 문제는 언어 계통이 다른 비서양인이 서양음악에 입문할 때 자못 심각한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모국어의 영향으로 체질적인 센내기적 리듬감을 가진 우리와 같은 경우, 그로 인해 야기되는 적절하지 못한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자아내기 십상이며, 최악의 경우(※ p.179의 악보158, 악보159의 경우)에는 선율선의 윤곽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악보66과 악보67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보66은 서양음악의 보편적인 아티큘레이션이지만, 이를 악보67과 같은 아티큘레이션으로 연주한다면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의 귀에는 영 생뚱맞게 들릴 것입니다. 이를 보아 알 수 있듯, 서양음악의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음악의 어법(語法, diction)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악보66. 정상적인 여린내기적 아티큘레이션 ― 소르, Op.35의 No.4, 기타 연습곡(전곡 ☞ p.328)

※ 원곡은 독주곡으로 되어 있습니다(원곡 ☞ p.330).

악보67. 비정상적인 센내기적 아티큘레이션 ― 소르, Op.35의 No.4, 기타 연습곡

참고: 영어 단어의 품사별 강세 ☜ p.81

영어 문장에서는 중요한 단어는 강하게, 중요하지 않은 단어는 약하게 발음합니다.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와 그렇지 못한 단어에 대한 구별은 문장의 내용에 따라 좌우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품사에 따른 강세의 유무는 다음과 같이 분류하는 것이 상례(常例)입니다.

강세가 있는 품사 :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 지시대명사, 의문사.

강세가 없는 품사 : 관사, 대명사, 전치사, 접속사, 조동사, be 동사, have 동사. 단, 문장의 끝에 위치하는 조동사, be 동사, have 동사는 강하게 발음합니다(예: Yes, I can.).

그리고, 복합 명사는 앞의 명사에, 형용사 + 명사의 경우는 명사에, 동사 + 부사 구문(예: Don’t give up)에서는 부사에, 동사 + 전치사의 구문(예: listen to)에서는 동사에 강세를 두는 편입니다.

참고: 여린내기와 센내기 ☜ p.56, 84

(※ 관련 내용 ☞ p.104, 참고: 박의 분할과 겹박자)

익히 알고 있듯 2/4박에서는 제1박이 센박이며 제2박이 여린박입니다. 지휘를 할 때, 센박은 지휘봉을 아래로 쳐 내리며 여린박은 위로 쳐 올립니다. 이와 같은 뜻에서 여린박은 (위로 쳐 올리는 박이라는 의미로) 상박(上拍), 업비트(upbeat), 또는 아우프탁트(Auftakt: 독일어)라고 하며, 센박은 (아래로 쳐 내리는 박이라는 의미로) 하박(下拍), 다운비트(downbeat), 또는 니데르슐라크(Niederschlag, 독일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상박, 업비트, 아우프탁트」등은 여린박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지휘봉을 쳐 올리는 박이란 뜻과 함께 센박의 앞에 위치하는 박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은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므로 외워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나 독일어 용어까지도. 상박을 아나크루시스(anacrusis)라고도 하는데, 이는 운율적인 용어입니다.

악구(phrase 또는 section)나 악절(phrase 또는 period)이 여린박(상박)으로 시작되는 것을 '여린내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센박(하박)으로 시작되는 것을 '센내기'라고 합니다. 서양음악에서의 여린내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리만(Hugo Riemann) 이후 상박은 (뒤에 오는) 하박을 유도하고, 하박과 연결되어 동기(motive)를 형성하는 것으로 널리 해석되고 있습니다.

서양음악에 있어서의 못갖춘마디로 된 곡은 동기(motive)나 프레이즈(작은악절) 자체가 여린내기로 되어 있음에 기인합니다. 때문에, 이들이 연결되어 형성하는 큰악절(sentence, period) 역시 여린내기일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여린내기로 되어 있는 큰악절들이 모여 '못갖춘마디의 곡'을 형성하게 되는 식입니다(악보68).

악보68. 여린내기 ― 바흐, 부레(BWV 996, Lute Suite No.1), 기타 이중주용 편곡(전곡 ☞ p.312)

참고로, 우리말 ‘악구(樂句)’는 작은악절(phrase) 또는 섹션(section), 이 두 가지를 다 의미하며, ‘악절(樂節)’은 작은악절(phrase)이나 큰악절(sentence, period)을 모두 뜻합니다. 섹션(section)이란 작은악절을 반분(半分)하는 구문적 단위입니다. 자세한 것은 <p.125, 참고: 섹션>에 설명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