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신현수 2000, all right reserved.
     여기 게재된 글이나 자료들은  그 전부 또는 일부를
     필자(신현수)의 서면 계약에 의한 동의 없이 인터넷
     홈페이지나 기타(其他) 출판물 등에  무단으로 사용
     할 수 없습니다.

 ※  이 글은 클래식기타지 2000년 9월호에 게재되었던 것
     입니다. 참고로, 클래식기타지와 필자와의  편집상의
     견해차가 커서 이후로 필자의 글을 더 이상 클래식기
     타지에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 필자 : 신현수 >

        

        


  ♧ 도제 수업 ♧

  지난 이틀간 혼자서 이 궁리 저 궁리 해 가며  초식을  검토하고 
열심히 연습한 덕분인지 아직 힘들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다섯번까
지는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악보9). 적어도 표정을 일그러뜨


                        악보9. 세하로 제1 ↔ 9 포지션 왕복하기

리는 일 없이. 그러나 여섯 번째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신통하게
도, 포지션을 옮기는 순간마다 잠깐씩 손가락에 힘을 빼고  이완시
키는 것만으로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고문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러한 변
화가 단지 이틀, 이틀만에 이루어질 수 있다니  !  」  이  노하우
(know-how)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지윤의 지적(知的) 호기심은  그
녀를 꽤나 조바심나게 했지만, 그러한 비결을 일찌감치 가르쳐  주
지 않고 그녀를 고통 속에 그대로 방치해 온 중년사내의 미필적 고
의(未必的故意)에 대한 의구심이 견제작용을 했다. 말하자면, 성취
감에서 오는 희열이 의구심과 함께 치미는 불편한 심기로 인해  상
쇄되어 그녀로 하여금 유보적인 과묵한 태도를 견지하도록  만들었
다.


                


  그녀를 지켜보던 중년사내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윤씨, 축하합니다. 드디어 요령을 알아내셨군요. 그동안  정
말 수고 많았어요.』

  말을 하면서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갔는데,  섬세하
게 생긴 연마용 줄과 칼 사포(sand paper) 등의 작은 공구들을  꺼
냈다. 그리고, 지윤의 기타를 건네 받아서 책상 위에 올려  놓고는 
상현주(上絃柱 nut)와 하현주(下絃柱 saddle 또는 bridge  bone)를 
손질하여 그 높이를 섬세하게  재조정했다(그림4).  상현주(nut)의 


     그림4. 상현주(nut)와 하현주(saddle 또는 bridge bone)

패인 홈(기타선이 끼워져 지나는 곳)을 손질할 때는 제1포지션  위
치에 10원짜리 구리 동전을 올려 놓고 그것을 참고로 하여 그 위를 
스칠 듯 지나는 기타선의 높이를 가늠해 가며 조심스럽게 다듬질했
으며, 하현주(saddle)를 갈아서 높이를 낮출 때는  제12프렛(fret)
에서의 기타선과 프렛 간의 간격 ― 그 내경(內徑)에 특히  유의했
다 (※ 하현주를 손질할 때에는 기타선을 적당히 풀고 하현주를 브
릿지에서 빼내어 유리와 같이 평평한 바닥에 사포를 깔아 놓고  그
기에 하현주의 바닥 부위를 조심스럽게 문질러서 갈아야 하며,  기
타선을 풀 때에는 앞판과 브릿지의 접착 부위에 선의 장력  변화로 
인한 충격이 급격하게 가해지지 않도록 선을 점진적으로 서서히 풀
어야 함). 지윤은 중년사내가 의외로 매우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정성을 다해 그러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을 보는 동안, 지윤은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렇다  해
도 따질 건 따지는 것이 앙금을 남기지 않는 현명한 태도일 것이었
다.

  다듬기를 끝내고 중년사내는 기타선을 다시 조율한 다음, 음계와 
화음 등을 뚱겨 보아 제대로 되었는지 시험했다.   이윽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원만한 왼손운지를 ― 특히 세하 주법을 ―  위해서는  지판에 
대한 기타선의 높이가 적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적절한 정도란 
것이 악기의 공명 특성이나 연주자의 터치가 갖는 특성에 따라  달
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미묘한 문제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상
현주와 하현주를 손질할 때는 극도로 조심해야  하며,  전문가적인 
안목이 없이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요. 자칫  실수하면 
부속 자체를 못쓰게 만들어버리기 일쑤거든요. 뿐만 아니라 하현주
(saddle)의 경우에는 그 높이에 따라 악기의 음질이 달라지는 경향
도 있습니다. 아무튼, 상·하현주의 높이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
각될 때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해요. 악기  제작가
에게 부탁하는 것도 좋겠죠. 특히, 값비싼 연주용 악기일 경우에는 
절대로 함부로 손대서는 안됩니다. 악기를 버려 놓을 수 있거든요.
』

  기타를 건네 받은 지윤이 시험해 보니 이전과는 그 느낌이  어딘
가 달랐다. 왼손 운지가 훨씬 부드럽고 편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자신의 악기가 아닌 듯했다. 그녀가 감탄하며 말했다.

  『훨씬 편하게 선을 짚을 수 있군요 !』

  일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지만, 그렇다 해서  은근히  치미는 
부아가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그녀가 퉁명스레 
쏘아 부쳤다.

              

  『근데, 왜 애초에 이렇게 손질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그랬다면 
그동안 고생이 훨씬 덜했을 텐데요... 그리구요, 그 '내공'이란 것
도 그래요. 은주를 꼬셨더니만, 한 술 더 떠서 초식이  어쩌구저쩌
구 하더군요. 내공이든 초식이든, 암튼 그러한 요령을 미리 귀띔만
이라도 해 주심 어디가 덧나나요? 정말 잔인해요.  뻔히  고생하는 
것을 보고서도 그냥 내버려 두는 심사란...』

  「심뽀란...」이라고 내뱉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머뭇
거리다 「심사란...」이라는 단어로 대신했는데, 그  때문에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 제가 욕을 먹어도 싸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러한 
고통을 겪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갈증이  심할수록 
물에 대한 고마움도 커지니까요. 이완(relax)이란 것이 얼마나  중
요한 것인지 절실히 느낄수록 그만큼 테크닉이 정교해지거든요. 근
육의 긴장과 피로 그리고 이완과 회복, 이들의 상관관계를 뼈에 사
무치도록 생생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
어서. 그런데 사실은 지윤씨의 경우는 그 기간이 좀 길어진 느낌이 
있어요. 제가 가르쳐 드리는 것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
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많이 망서리
긴 했죠.』

  그가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뭔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는지 지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일부러 궁리해낸 듯한 말을 덧붙였다.

  『지윤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럿이 함께 어울려 연습하는  환경
에서 연습을 해 왔다면 일찌감치 감(感)을 잡았을 거예요. 그런 환
경에서는 사람이 많은 만큼 다양한 경우가  표출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보다 쉽게 요령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리고요, 지윤씨의 꾀
를 부릴 줄 모르는 정직한 성격 또한 고통스런 상황을  연장시키는 
데 한 몫을 했겠죠?』

  지윤은, 교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려서 은연중 고지식한 방법을 강
요하곤 했던 그가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이 다소 놀라웠다. 「정직한 
성격 탓이라니」.   그가 다시 말했다.

  『포지션을 옮길 때마다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잠깐씩 이완시킴으
로써 피로의 누적을 막고 힘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 이는  깨달
음의 시작에 불과한 것일 테지만 어쩌면 모든 테크닉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해요. 그러니, 진정 중요
한 연습은 이제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고 얻어낸 깨달음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그 이완을 보다  정
교하게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더 이상,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을 생각없이 그대로  감수하거
나 방치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연습은 그동안  겪
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은 백해무익일  뿐이지요. 
앞으로 진정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완에  대해서입니
다.』

  평소 때의 중년사내는 다소 어눌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관심  분
야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만은 달랐다. 다소 느릿한 말투이기는  했
지만 그것이 되려 사려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가 겉보기보다는 꽤나 설득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곤 했다. 그는 지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이 주로 그녀의 발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윤은 그러한 그의 태도
가 신경에 거슬리곤 했으나 이제는 익숙해져서 무시해 버리는 편이
었다.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 저 같이 우둔한 사람이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길 바라셨다니... 』

  「우둔? 전형적인 내숭용 멘트 !」라고 생각하며 중년사내는  뭔
가 좀더 해명이 필요함을 느꼈다.

  『암튼 미안하게 됐어요. 하지만, 남보다 길어진 그 힘든 경험이 
결코 손해 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요. 세상사가 대개는  양면
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단점은 곧 장점일 수 있고, 반대로  장점
을 뒤집어 놓고 보면 단점이 되어버리곤 하지요.』

  『현대 인류의 문명은 아시다시피 매우 복잡다양해졌어요.  지금
에 와서야, 19세기 유럽 대학의 과학 교과서가 단 한 권으로  충분
했다는 이야길 누가 믿겠습니까. 하지만, 당시는 물리 생물 화학을 
한 권의 책에 수록했다더군요. 어떻게 상상이나 할 법한 일입니까. 
그만큼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겠지요.』

  「지금 이이가 대체 뭔 말을 할려고 ?」화제를 갑자기 바꾼 중년 
사내의 태도에 지윤은 아연실색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복잡다양해지면서 교육이 직접경험보다는  주
로 간접경험을 가르치는 데 치중하는 식으로 변해 갈 수밖에  없음
은 당연한 귀결이라 해야 겠지요. 복잡다양한 내용들을 일일이  직
접 경험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데, 그렇다 해도  여
전히 간접경험으로 직접경험을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마련입
니다. 이를테면, 장인정신 같은 것이 그렇죠. 입문한 제자를  고의
로 몇 년씩, 허드렛일로 머슴부리듯 부렸다는 옛 도공의 설화는 어
쩌면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한 고생을 겪게 하지 않고서야 달리 어찌, 도공으로서의  험난
한 길을 끝까지 좌절하는 일 없이 의연하게 걸어 갈 수 있도록, 인
내와 겸허한 태도 그리고 자기 성찰의 시각 등을 심어 줄 수  있겠
습니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명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기약없
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인내와 자기성찰의 바탕을 다졌을 그 옛날의 
어린 도공 지망생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중년 사내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
는데, 다음 말이, 그의 화술에는 항상 주제의식이 잠재되어 있어서 
이야기가 다소 방향을 잃은 듯한 경우에도 듣는이가  전혀  불안해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했다.

  『그동안 지윤씨가 악보9에 대한 연습으로 악전고투하는 것을 그
대로 방치한 것은 그와 같은 생각에서 오는  망서림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말하자면, 직접경험을 통해 가르칠 수밖에  없
는 성격의 교육과정 중 하나로 이해해 달라는 말입니다만.』

  중년사내는 드디어 지윤의 원망과 비난으로부터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가볍게 빠져나가 버렸다. 그의 교묘한 화술에 내심  감탄하
여 지윤이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으나, 여유를 주지 않고 사내가 
새로운 화제를 끄집어 냈다.



  ♧ 힘? 그런 말 하덜 마소! ♧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세하를 할 때 손가락의 어떤  부
위를 사용하는 것 같았나요? 다소 이상한 질문으로 들릴 지 모르겠
군요. 말을 바꾸어 질문을 다시 하도록 할께요. 구체적으로 손가락
의 어떤 부분을 강화하고 단련해야 세하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일까요?』

  『그야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손가락 힘을 길러야죠, 뭐. 필
요하다면 악력기를 사용해서라도. 아니면, 자꾸  세하를  반복하다 
보면 1번손가락의 손바닥 부위 중 기타선에 의해 눌리워지는  곳마
다 기계체조 선수들의 손바닥처럼 굳은살이 밸 테고 그러면 세하가 
훨씬 쉬워지겠죠. 그렇지 않은가요?』

                 

  시큰둥한 기분에 지윤이 별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러
나 말을 내뱉는 도중, 그가 뭔가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말머리를 
꺼낸 것이 아닌가 하는 직감이 스쳤다. 생각하기 전에  말이  먼저 
나가면 항상 손해보기 마련이다. 왠지, 동문서답이 되고  만  꼴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손가락 힘이 센 사람은 처음부터 세하를  잘  하겠군
요. 이를테면 역도선수나 씨름선수 같은 사람 말이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손가락 힘이 아무리 세도 기술이 없으면  여의치
가 않은 것이 세하 주법이죠. 언뜻 세하 주법에 관한 한  기술보다
는 힘이 우선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물론 세하 주법에 대한 감각
을 익힌 다음에야 손가락 힘이 센 사람일수록 유리한, 그러한 측면
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것은 세하 주법을 어느  정
도 익힌 다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하 주법으로 인해 손
가락의 손바닥쪽 면에 굳은살이 배기는 일이란 웬만해서는  기대하
지 않는 것이 좋아요. 좀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으니까요.』

  말을 마친 중년 사내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아마 그가  한 
말을 뒷받침해 줄 설득력 있는 물증을 찾고 있을 것이었다. 지윤은 
자신의 어리석은 대답으로 인해 이야기가 그 핵심을 벗어나고 있음
을 깨닫고 조금 답답해졌다.

  이윽고 중년사내가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손가락 힘이 세하를 위한 필요 조건이거나 충분 조건이 아니라
는 사실은 성인의 기량을 능가하는 나어린 기타리스트가  존재하는 
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불과 8 살의 나이에 유럽을 
감동시킨 줄리오 레곤디(Giulio Regondi, 1822-1872)는 따로  소개
가 필요없는 인물입니다, 기타음악에 친숙한 사람에게는요. 그는 8 
세때 프랑스의 리용에서 데뷔했으며 그 해 4월 파리로 무대를 옮겨 
이미 한 사람의 연주가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인 1831년 런던으로 가게 됩니다.』

  [ 註 : 줄리오 레곤디의 출생년도가 1824년이라는 주장도 있음.]

                 

  중년 사내는 이어서, 1831년 「하모니콘(Harmonicon)」이라는 엄
청 케케묵은 잡지에 게재되었다는 레곤디에 대한  글,「딜레탕트의 
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인용했다.「오늘날 음악계에 있어  경이
로운 일은 줄리오 레곤디(Giulio Regondi)이다. 스페인 기타를  연
주하는 이 소년은 전문가들까지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다. 이 흥
미로운 천재 소년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만 ― 은 리용에
서 태어났으며, 겨우 8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다. 그의 어머니는 
독일 사람이며,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단지 그가 어려
운 부분을 정확하고 깨끗하게 연주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를 정당하
게 평가한 것이 아니다. 그는 리듬과 선율을 정확히 연주할 뿐  아
니라, 어른들도 부러워하는 표현력과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레곤디의 음악에 대하여 좀더 이야기 했으나, 지윤의  관심
을 끌지는 못했다. 중년사내는 다시 세하 주법으로 화제를  되돌렸
다.

  『현 시대에도 나이 어린 신동 기타리스트들이 드물지 않게 출현
하고 있긴 하지만, 피아노나 바이얼린에 비해서는 그 수가 많지 않
은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의 기타 교육체계에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세하 주법에 대한 어떤 과학적인 또는 체계적인 교수법도 준비되어 
있지 못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그 이유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습
니다. 노하우(know-how)가 없이 힘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세하 주법
이야 말로 나 어린 학습자에게는 아예 극복이 불가능한 장애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어쨌거나,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의 
나어린 기타리스트가 출현한다는 사실은 세하 주법이 결코 힘에 의
존하는 운지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닐 수 없죠.』

  사실, 레곤디에 대한 이야기는 세하 주법에 대한 지윤의  고정관
념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여덟 살짜리 아이의  손가락  힘이 
어찌 어른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으리.」

  『이제, 세하 주법 역시 심오하고도 다양한 내용의 테크닉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운지법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힘이 그 관건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테크닉이 미비한 상태에서 힘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세하를 하려다 불가항력적인 고통과 좌절을 맛본 경험으로 인해 대
개의 학습자들은 세하 주법에 관한 한 힘이 그 필요충분  조건이라
고 미리 단정지어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고정관념은  정교
하고도 오묘한 세하 기법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지윤은 그의 말이 구구절절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
었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 어눌한 듯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설득력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왠지 자꾸 겉도는 느낌이어서 지윤은 조바심이 났다. 지윤이  말했
다.

               

  『그렇다면 분명 세하 주법이란 힘을 기른다고 해서 해결될 성격
의 것이 아니겠군요. 여덟 살짜리 아이조차도 세하 주법을  능수능
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그 근본 원리가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간단히 요약한다면, 고도의 능동적인 이완(弛緩 relax)과 정교
한 테크닉이 그 관건이라 할 수 있어요. 「능동적인 이완」에 대해
서는 이미 약간은 맛보셨을 것이나 그 기법을 보다 깊이 있고 정교
하게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며, 「정교한 테크닉」에 대해서는  이
제부터 하나씩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중년사내의 두리뭉실한 대답은 지윤의 조바심을 되려 더  부채질
했다. 지윤은 이럴 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방향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중년사내의 표정을 유심
히 살피며 지윤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아까 저에게 물으신 것이, 무엇인가 말씀하실 것을 
내심 정해 놓으시고 하문(下問)하신듯 싶은데요. 「세하를 할  때, 
손가락의 어떤 부위를 사용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손가락의 어
떤 부분을 강화하고 단련해야 세하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라고 물으신 것 말예요.』

  중년사내의 표정이 미소와 함께 밝아진 것은 아마 이심전심(以心
傳心)의 반응이었을 터였다.


  
  ♧ 너희가 정녕 세하를 아느냐 ♧

  『정교한 세하 기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세하를 할 때 사용
되는 손가락의 해부학적인 부위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해
요.』

  백지에다 그림을 그려가며 그가 설명했다.

      
                    그림5. 큰세하 단면도

  『이야기가 쉬워지도록 우선, 1번손가락으로 여섯 선을 다  누르
는 큰세하를 할 때 손가락 마디별로 누르는 선에 대하여 알아 보도
록 합시다. 그림5에서 보듯이 대개 ④ ~ ⑥번선은 손가락 셋째마디
로 누르고, 다음 ② ~ ③번선은 둘째마디 그리고 나머지  ①번선은 
첫째마디로 각기 누르게 됩니다. 이때 기타선(④, ②번선)이  손가
락 마디선을 지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
로 손가락 제3관절의 마디선이 ③번선과 ④번선 사이에 놓이게  하
는 것이 가능하며 그런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
데 기타선의 간격이 포지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손가락  길이가 
짧은 연주자의 경우, 제7포지션 이상의 상위 포지션에서는 이를 지
키기가 여의치 않을 수도 있으며, 제9포지션 정도에 이르면 경우에 
따라 ⑤ ~ ⑥번선은 셋째마디, ③ ~ ④번선은 둘째마디, ① ~ ②번
선은 첫째 마디로 짚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라 해야 할 것입니다만, 아무튼 각자의 신체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적절히 융통성을 가져야 할 문제라 하겠습니다.』

  중년사내의 지시에 따라, 지윤은 1번손가락으로 큰세하를 한  채 
잠시 동안 지판을 지그시 눌러서 손가락의 손바닥쪽  면(掌側面)에 
기타선 자국이 남도록 한 다음, 그 패인 자국을  보고  중년사내가 
설명한 바를 확인했다. 그것을 보고 중년사내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 손가락의 장측면(掌側面)과 배측면(背側面) : 해부학적으로  손
가락을 굽힐 때 접혀지는 마디선이 있는 쪽을 「손가락의  장측(掌
側 palmar)면」또는 「손가락의 손바닥쪽 면」, 이와 반대되는  쪽
을 「손가락의 배측(背側 dorsal)면 또는 「손가락의 손등쪽  면」
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하를 할 때 손가락의 각 마디는 
각기 해부학적으로 성격이 다른 생체조직을 사용하여 선을  누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손가락  셋째마디는  탄력이 
풍부한 살집 자체로 선을 누르며, 둘째마디와 첫째마디는 주로  힘
줄(腱 tendon)의 장력을 이용하여 선을 누르게 됩니다. 즉, 둘째마
디는 심지굴근(深指屈筋 flexor digitorum profundus)의  건(腱  : 
힘줄)에  의한  장력을,  그리고  첫째마디는   천지굴근(淺指屈筋 
flexor digitorum superficialis)의 건(腱)에다  심지굴근의  건을 
합친 장력을 이용하게 됩니다. 내 이야기가 좀 어렵게 들리죠?』

  아닌게 아니라 지윤은 황당하고 난감했다. 좀 어렵게 들리는  정
도가 아니었다. 숫째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계속되어 나간다면...」하고 생각하자  암울
한 느낌이 엄습했다. 그러한 낌새를 알아채고 중년사내가 소리내어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허, 허, 허!   설명을 다 듣고 나면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
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당장에는 생소한 해부학 용어들을 접
하게 되어 당황러울 수밖에 없겠지만요. 이해가 되지 않는  용어들
은 일단 선반 위에 올려 두도록 해요. 이야기가  진척되어  가면서 
하나씩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지레 겁먹을 것은 없어요.』

  그는 책장에서 인체 해부도가 수록되어 있는 책을 몇 권  가지고 
와서 펼쳐 보이면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림6을 보면, 손가락 뼈의 기타선에 닿는 면(掌側面)이  움푹 
패여 들어간 요면(凹面)을 이루고 있어서 그 자체로는 세하를 하는 
데 있어서 그리 도움이 되는 형태가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그림6. 1번손가락 뼈의 요철(凹凸)

  과연 그랬다. 살을 발라내고 뼈만 남겨 찍은 해부 사진이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에는 힘줄(腱)들이 지나고 있는데, 힘줄이란  팽
팽하게 당겨지면 뼈처럼 단단해지거든요. 발뒤축을 지나는  아킬레
스건이야 누구나 알고 있는 존재이니 힘을 주었을 때 힘줄이  얼마
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 쉽게 확인해 볼 수 있거니와, 손목을  약간 
굴곡시키고 힘을 주면 그곳을 지나는  굴근(屈筋)의  힘줄(腱)들을 
역시 어렵지 않게 만져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그림7).  이들은 

              
                            그림7

힘을 빼고 만져 보면 고무줄처럼 부드러우나 힘을 주면 마치  뼈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 겁니다. 손가락의 손바닥쪽 면(掌側面)에는 
심지굴근(深指屈筋 flexor digitorum profundus)의 건(腱)과  천지
굴근(淺指屈筋 flexor digitorum superficialis)의 건이  지나는데 
이들 역시 여늬 힘줄과 마찬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그림8).
』

  
             그림8. 심지굴근의 건과 천지굴근의 건

  『심지굴근의 건(腱)은 팔에서부터 뻗쳐 내려와 손가락 셋째마디
뼈(末節骨)에 부착하므로 세하 주법에 있어서 주로 이 건이 지나는 
손가락 둘째마디와 첫째마디로 선을 누르는 데 도움이 되며,  천지
굴근의 건은 팔에서부터 뻗쳐 내려와 손가락 둘째마디뼈(中節骨)에 
부착하므로 주로 이 건이 지나는 첫째마디로 선을 누르는 데  도움
이 됩니다(그림8, 그림9).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둥근  고리 
모양이 되도록 맞닿게 하고 힘을 주면서 주의를  기울여  만져보면 
이들 역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확인이  어려우
면, 맞닿은 양 손가락(집게와 엄지)에 힘을 주었다뺐다 반복하면서 
만져 봄으로써 힘줄의 탄력 변화를 감지하는 방법으로 확인하면 됩
니다.』


                 그림9. 심지굴근(深指屈筋)과 천지굴근(淺指屈筋)

  지윤은 손가락 마디뼈를 지나고 있는 힘줄 또한 힘을 주면  뼈와 
구별이 힘들 정도로 단단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손가락을 
굴곡시킨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게 감지되었으나 손가락을 곧게  펴
서 세하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중년사내
의 조언에 따라,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뺐다 하면서 세심하게  살피
자 어렵사리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해부학  관련  용어들이야 
생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림6그림8을 살펴 보니 뭔가  알  것 
같기도 했다. 손가락 마디뼈들의 생겨먹은 꼬락서니가 그림6과  같
대서야 그 자체만으로는 분명 세하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림8그림9를 보면 손가락 첫째마디뼈 위로는 심지굴근의  건과 
천지굴건의 건이 지나고 있으며, 손가락 둘째마디뼈 위로는 심지굴
근의 건이 지나고 있다. 그런데 심지굴근의 건이, 천지굴근의 건이 
갈라져 만들어진 틈새로 통과하고 있는 모양이 재미있게  생각되었
다. 중년사내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테크닉이 미숙한 초보 학습자가 큰세하를 할 때 주의깊게 살펴
보면, 손가락 제3관절의 마디선에 ④번선이 지나도록 짚은 탓에 ④
번선의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현상을 더러 관찰하게  됩니다(그림
10). ④번선의 굵기가 인접한 ③, ⑤번선에 비해 가늘기 때문에 손
가락마디선과 ④번선이 일치하게 되면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그림10. 잘못된 큰세하 ― 손가락 제3관절의 마디선에  ④번선이 지나는 경우

됩니다(이 경우, ②번선 역시 제2관절의 마디선을 지날 위험이  다
분합니다). 그러므로 제3관절 마디선이 ③번선과 ④번선 사이를 지
나도록 유의해서 짚어야 합니다(그림5). 다시 말해서, 큰세하를 할 
때 1번손가락의 끝이 ⑥번선 위로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점만 주의한다면 누구든  손가락  셋째마디로 
선을 누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손가락 셋째마디는  탄력
이 풍부한 살집으로 덮혀 있는 탓에 별도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다
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손가락 둘째마디나  첫째마디, 
그중에서도 특히 둘째마디로 누르는 선의 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서 곤란을 겪는 경우는 누구나 경험하게 됩니다. 손가락  첫째마디
는 두 개의 힘줄(腱)이 지나므로 상대적으로 둘째마디보다는  유리
할 뿐만 아니라, 차후에 다시 설명하게 되겠지만, 그 위치가  지레
점에 가깝기도 해서 선의 장력에 대항하기가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
다. 해서, 어려움이 덜하지요.』

  말을 마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악보를 그려 보였다(악보10).


                       악보10. G (major chord)와 Gm (minor chord)악보10은 C(다)장조의 딸림화음에 해당하는  G  코드(G  major 
chord)와 G 코드의 제3음(시 B)을 반음 내려 단3화음으로 만든  Gm 
코드(G minor chord)입니다. 그런데, 학습자들은 G 코드에 비해 Gm 
코드를 힘들어 합니다. G 코드와 Gm 코드의 차이점이라면 제3음(시 
B ↔ 시b Bb)의 차이밖에 없지요. 이 제3음 시(B) 또는  시b(Bb)은 
③번선에 위치하며, ③번선은 기타선 중에서 가장  굵은  ⑥번선에 
버금가는 굵기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림11).  그러나  장력(張力)은 
여섯 선 중에서 가장 약합니다. 그러므로 Gm 코드를 짚을 때 이 음
(시b Bb)을 담당하는 손가락 둘째마디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 
즉, 다시 말해서 손가락 마디뼈의 손바닥쪽 면(掌側面)이  요철(凹
凸)없이 평탄하다면 여섯 선 중에서 이 선이 가장  누르기  쉬워야 
하며 따라서 Gm 코드가 G 코드보다 특별히 짚기 어려울 하등의  이
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림11. 기타선의 굵기 비교

  악보10에서 예든 두 코드는 기타 코드 형태(chord form)  중에서
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유형의 하나다. 이  코드를  제1포지션에서 
짚으면 F(Fm) 코드가 되며 제5포지션에서는 A(Am) 코드가 된다. 지
윤 역시 이 코드의 단3화음 형(minor chord form)을  짚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생각해 오던 터이었다. 장3화음 형태와의 외견 상의 차
이점이라고는 ③번선을 하나 더 세하로 눌러야 한다는 것밖에 없는 
데 비해 코드를 누르는 전체적 힘은 두 배 세 배 더 들었다.  중년
사내의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손가락 둘째마디
를 지나는 힘줄(심지굴근의 건), 그것이 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언뜻, 이유없이 어려워 보이는 이러한 코드의 운지를 원인  규
명이 없이 막연히 힘으로 해결하려 들면 어찌 될까요?』그가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선생님께서 왜 힘줄(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이제 알 
것 같군요. 아니, 알 것 같은 정도가 아니라 문제의 핵심에 머리를 
「쾅!」 하고 부딪힌 느낌이예요.』

  사실 중년사내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지윤은 그의 남다
른 통찰력에 대하여 약간의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
는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연주 이론의 한 분야를  서두르
지 않고 차근차근 규명해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학습자들은 십중 팔구 그 이유
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게 됩니다. 그리
하여 무모하게 힘만 소진하게 되고 그 결과 무리(無理)가  무리(無
理)를 낳는 무리(無理)에 직면하게 됩니다. 일단 한 번 시작된  무
리한 운지는 좀체 거두어 들일 수 없는 빈곤의 악순환을 낳게 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습자는 세하 주법이란 손가락 힘이 그 관건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생각은 그대로 고정관념이 되어 굳어
져 버립니다. 여기서부터 세하를 기피하는 증세가 시작되는 것입니
다.』

  중년사내의 시각은 자못 예리하고 치밀한 데가  있었다.  지윤은 
지금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을 더 이상 미적거리면서 망서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의 질문을  기다리
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 경우 손가락 둘째마디를 지나는  심지굴근의  건
(腱)을 무리없이 뼈처럼 단단하게 하는 감각이 관건이겠군요? 그것
도 순간적으로!. 그리할 수만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  코드
를 짚을 수 있겠죠? 여늬 코드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훈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신통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데요. 해부학이란 것이 제게는 워낙 생소한 분야이니,  하나부
터 열까지 선생님의 도움이 없이는 사고(思考)의 전개가  불가능한 
상태일 수밖에요. 어떤 방법으로 연습해야 하나요?  선생님.』

  『물론 적절한 훈련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각 손가락 마디의 해부학적인 재원들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합
니다. 그 생리적인 특성과 운동 메커니즘에 대해서요. 개념이 분명
해야 효과적인 연습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해부학적인 재원이라면... 손가락 셋째마디는  탄력이  풍부한 
살집을 사용하여 선을 누르고 나머지 둘째, 첫째마디는 힘줄의  장
력을 이용한다고 하셨으니까, 살집과 힘줄이 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직 손가락을 지나는 힘줄의  장력과 
관련된 운동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먼저 그에 대하여 설명해야 겠죠? 그리고 나서 악보9에 의한  세하 
연습에서의 이완을 좀더 정교하게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요령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하로 
누른 음들이 제대로 소리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는  물론
이거니와 얼마나 이완된 상태로 편안하게 세하를 하느냐에  있으니
까요. 그리고 점차적으로 세하 주법에 대한 여러가지 테크닉과  다
양한 연습방법 등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물론 손가락 마디를 지나
는 힘줄의 장력에 대한 감각을 기르기 위한 연습을 포함해서요. 그
리하여 머잖아 세하 주법이 얼마나 편리하고 즐거운  운지법인지를 
스스로 실감하게 해 드려야지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제가, 세
하 주법이야 말로 기타  운지법에  있어서의  마이티  카드(mighty 
card)라는 말을 했던가요?』

  중년사내의 어투는 여전히 느릿했다. 마치 사고(思考)의 늪에 빠
져서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처럼.

  『큰세하를 할 때, 그 구성요소인 손가락 셋째마디 둘째마디  그
리고 첫째마디에는 각기 미묘한 차이가 있는 운동 메커니즘이 적용
됩니다. 손가락 마디마다 사용되는 해부학적 재원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이치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차이를  구별하는 
감각과 그와 같은 재원을 각기 효과적으로 운용할 적절한 테크닉을 
갖추지 않고, 오로지 「선을 누른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세하를 
해서야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기법을 구사하기 어렵지요. 뿐만 아닙
니다. 세하는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합니다. 따라서  세하의  형태에 
따라서도 구사하는 기법 역시 그만큼 다양해지게  됩니다.  세하로 
눌러야 하는 선의 조합에 따라 동원해야 하는 재원과 그  재원들에 
대한 힘의 분배를 달리해야 하고, 운용 메커니즘 또한 각기 달리해
야 합니다. 정교하고 섬세한 테크닉은 최대한의 이완을 보장해  주
어, 편안하고 즐거운 세하 주법이 되게 해 줍니다. 그야말로  마이
티 카드(mighty card)로서의 세하 주법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지윤은 언젠가 중년사내가 말했던 노하우(know-how)의 실체가 어
쩐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짐
짓 딴청을 부려 그를 좀 성가시게 하고 싶은 심술이 났다.



  『하지만 선생님, 그러한 재원들의 해부생리학적인 특성과  운동 
메커니즘을 모르고서도 지금까지 많은 연주가가 세하 주법을  능숙
하게 잘 구사해 왔지  않습니까?   설마,  여덟  살  소년  레곤디
(Giulio Regondi)가 그러한 지식을 가졌을 리도 만무하고...』

  중년사내가 약간 곤혹스런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곧 그의 어눌한 투의 그러나 꽤 논리정연한 말이 굴러나왔다.

  『물론 그렇긴 하지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각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가졌거든요. 세하 테크닉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그것을 연습해 나가는 중에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근육과 감각이 점점 다듬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물
론, 상당한 시행착오도 경험하게 되겠지만. 대개는 그러한  과정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스스로 깨닫고 있지는  못할지
라도 충분한 연륜에 도달한 연주자는 손가락 각 마디의 해부학적인 
재원들을 그 특성에 맞게 운용하는 테크닉에 스스로 적응되어 있는 
것입니다. 게중에 예민한 감각을 가진 연주자는 해부학적인 재원들
의 특성을 그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자각·통제하는 능
력을 가진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근본 이치에 대한  규명
이 없이 오로지 시행착오와 본능적인 감각에만 의존하는 그와 같은 
경우, 테크닉에 대한 성취도에 있어서 학습자 서로간에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말하자면 소질이 있고 예민한 감각을 지닌  학습자
는 매우 빠른 성취도를 보일 것이고 그렇지 못한 학습자는  상당한 
세월 동안 많은 노력을 허비한 다음에야 바라는 바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또는 운이 좋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마는 경우도 생
겨나겠지요. 그러나,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최고의  완성
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근본 이치를 체계적으로  분석·
규명한 지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토대로 출발하는 학습자는 재능의 열세(劣勢)에  크
게 영향을 받지 않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경지에 도달하는 이점
(利點)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실패하는 일 없이 말입니다.』

  지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좀더 
계속되었다.

  『레곤디(Giulio Regondi)에 대해서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
군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신과 
대자연에 의해 교육되는 것이라고요. 가르치는 이가 있건 없건, 그
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모든 피조물로부터 스스로 배워나가는.
』

  중년사내의 말이 달빛 아래 고요히 이는 잔물결처럼 귓가에 밀려
왔다. 아마 그의 어눌한 말투 때문에 더욱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많은 초보 학습자들이 중급과정의 문턱에서 세하 주법에  그만 
기가 꺾여버리고 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하우에다 적절한 
노력만 더한다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
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도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

  이미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날의 레슨은  여
기서 끝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