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신현수 2002, all right reserved.
           필자의 허락없이 이 글의 전부나 일부를 다른 곳에
           게재하거나 이용할 수 없습니다.


 군 입대를 앞둔 기타학습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악기 없이 기타연습을 계속하는 방법에 대하여)

  군 입대를 앞둔 학습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연주가
를 지망하는 학습자로서 군 입대 기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에
대한. 그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만,
언제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그러한 내용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
둘 필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둔 기타 학습자 여러분
께 좀더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마음 한 구석
에 늘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여러분께서는 여러가지로 심란할 것입니다. 악
기를 전공하는 사람에게 3 년에 가까운 입영 기간은 어쩌면 절망감
마저 느끼게 하는 장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의무병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 대다수 나라의 젊은이들에 비해 극히 불공평한 경쟁  조
건이니 말입니다. 하루가 아쉽도록 한참 젊음을  불태우며  연습에 
몰두해야  할 피끓는 시기에 장기간 동안 꼼짝없이 연습을  쉬어야 
하니. 그러고도 어찌 비르투오소가 되길 바랄 수 있으리 싶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레 자포자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나
약하고 성급한 태도가 아닐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기에 따
라서는 군대 3 년이, 오히려 진정한 연주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 중에 현재 여러분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점들을 
깨닫게 해 주고 그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기간이 되어 줄 지도 모
르기 때문입니다.

  필자 역시 과거 군입대를 앞두고 그로 인해 절망감을 느꼈던  적
이 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여러가지 궁리를  거듭하다 
보니 다행히도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군 입대 
기간이 (기타리스트로서의 내 생애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일만
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경험했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입영 기간 동안에도 공백 없이 guitar 공부를 - 음악 공부를 -  계
속했던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제가 아래에  제
시되는 방법들을 전부를 다 실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은 
그러했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면, 연주가를 지망하는 학습자들이 지나치게 악기 
연습에만 치중하는 예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연주가가 되고자 하
는 사람이 악기 연습에 열중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요? 그렇습니
다. 연주가 지망생이 악기 연습에 열중하는 게 그리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러분께,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
해서는 악기 자체에 대한 연습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공부해 두지 않
으면 안될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좀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으나,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연습하는 방법에 의해 악기를 사용하는 연습의 단점을  보완함으로
써 기량을 배가(倍加)해 나갈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악기가 없이도  바흐의  샤콘느를 
연습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진정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는 돌을 다듬고 나무를 깍고 진흙을 
빚는 테크닉에 앞서 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공부가 있습니다.  즉, 
그러한 잔재주보다 먼저 균형과 변화와 통일에 입각한 미학적 감각
을 길러야 하고 사물의 형태를 통해 그 본질을 파악하는 시각을 다
듬어야 하고, 인체를 조각하기 위해서는 해부학도  공부해  두어야 
하고, 그리고 기존의 형태를 극복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형태를 재
구성해 내는 사고(思考)의 깊이를 심화시켜야 합니다. 글씨를 빠르
게 그리고 아름답게 쓸 수 있다 해서 그것이 문학성 높은 소설이나 
시를 잘 쓰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같이, 기타리스트가 - 진정한 음악가가 - 되기 위해서는 악
기 연습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절실히 필요한 여러가지 공부들이 있
습니다. 우선 그러한 점들에 생각이 닿는 정도만으로도 군대  3(?) 
년을 허무하게 보내는 일 없이 연주가로서의 실력  향상에  매진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들을 찾아 낼 수 있게 됩니다.    

           

  군 복무 기간이 기타 학습자로서의 자신의 발전에 치명적인 장애
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악기가 없으면 연습이나 공부
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부터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이나 라흐마니노프(Sergey Vassilie 
-vich Rakhmaninov)가 피아노를 공부한 방법을 연구조사해 보면 이
와 관련하여 꽤나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Walter Wilhelm Gieseking(1895.11.5 ~ 1956.10.26) *

  라흐마니노프는 단 한 번도 피아노로 연습해 본 적이 없는 곡을, 
(피아노가 없이 눈으로) 그 악보를 읽는 것만으로 연습하고 암보하
여 무대에서 훌륭하게 초연하는 시범을 해 보인 적이 있습니다. 기
교적으로 매우 난해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그러한 연습 방법을 시험해 보기 위해 돈 많은  독
지가가 고의적인 프로그램으로 어떤 작곡가에게  특별히  의뢰하여 
작곡된 것이었으므로 라흐마니노프로서는 난생 처음 대하는 곡이었
습니다. 악기가 없이 연습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가 없는 독방에 악보만 지참하고  수일 
동안 갇혀 지내야 했었습니다.

                       
  * Sergey Vassilievich Rakhmaninov(1873.4.1 ~ 1943.3.28) *

  악기가 없이 악보만을 보고 연습하고 암보하는  능력이,  특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만 허용된 별난 재주가 아님은 발터 기제킹을 
당대의 연주가로 키워낸 칼 라이머(Karl Leimer)의 교수법이 잘 대
변해 줍니다.

  기제킹 역시 놀라운 암보 능력을 보여 주곤 했었는데,  연주회를 
마친 늦은 밤 새로이 작곡된 악보를 건네 받은 다음, 다음  연주회 
장소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그것을 읽어보는 것만으로  바로  다
음날 저녁 연주회에서 그 곡을 암보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식이었습
니다.

  기제킹의 스승 칼 라이머(Karl Leimer)는 그의 저서 '현대  피아
노 연주법(Modernes Klavierspie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
니다. 

  "복잡하고 난해한 곡을, 피아노를 치지 않고 그저  악보를  읽는 
것(즉 악보를 '반복하여 고찰'하는 것)만으로 암보하여 연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더욱 완성함으로써, 학습자가  아연(啞然)하리만
치 단기간에 작품을 완전하게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암보에  도달
하는 동안 기교적인 연주력 쪽도 '반복하여 고찰'하는 과정을 통하
여 자연히 준비되는 것입니다. 악기를 사용하여 연습하는 일  없이 
말입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들  했으나,  사실은 
(기제킹을 가르친 방법과) 동일한 교수법에 의해 그러한 능력을 완
성한 제 2, 3의 기제킹이 배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이스트 
클랏세의 총기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도 적용하여 놀라운 성과를 올
린 바 있습니다....(중략)... 나는 많은 곡을  암보로  학습시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연주회를 위하여 준비하는 작품이나 특별히 
교육적인 연습곡, 무엇보다도 먼저 바흐 작품 등에서만 그것을  요
구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실을 지적해 두는  바입
니다."라고.

  발터 기제킹은 어린 시절 양친으로부터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기
는  했지만  정식  음악  교육은  1911년  모친의  고향인  하노버
(Hannover)로 이주한 다음, 그곳 시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칼  라이
머(Karl Leimer)를 사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12년  16세 
때부터 정식 음악 수업이 시작되었으니 그 출발이  결코  빨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불과 5년 후에 하노버에서 리스트  협주
곡 제1번으로 데뷔를 하면서 프로 연주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
고, 이후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  되었습
니다. 그의 정교한 테크닉과 놀라운 암보 능력은 바로 칼 라이머를 
사사한 5 년 동안 길러진 것이며, 그와 같은 칼  라이머의  독특한 
교수법은 그(칼 라이머)의  저서  '현대  피아노  연주법(Modernes 
Klavierspiel)'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라이머 = 기제킹에 의함'이
란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지만 두 사람에 의한 공저라기보다는  라
이머에 의하여 저술된 책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의 서문은  기제킹
이 썼는데, 그는 "배운 지 12 년이 지난 지금도 라이머의 교수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다"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후 통
상적인 피아노 연주-교수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칼 라이머의 암보 방법은 일종의 시각적 암보법이라 할 수  있습
니다. 그림이나 풍경 또는 아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듯 악보 자체
를 눈에 떠올리는 암보 방법인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암보한 
경우에는 외우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오선에 옮겨 적을 수도  있습
니다. 이에 반하여, 악보 자체를 시각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수없이 반복 연주함으로써 어떤 음을 짚고  뚱기는  동작이 
다음 음을 짚고 뚱기는 동작을 유발해내는 식의 '조건반사의 연쇄'
에 의하여 곡을 외우는 것을 '근육 기억법' 또는 '손가락  기억법'
이라고들 합니다. '근육 기억법'에 의해 곡을 외우고 있는  경우에
는 연주 도중에 한 음을 삐끗하여 놓치게 되면 곧바로 연주가 중단
되어 버립니다. 조건반사의 연쇄 사슬이 끊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면 연주가 중단된 부분보다 훨씬 앞  부분에서부터  다시 
연주를 되풀이해야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됩니다 - 최악의 경우에
는 곡의 첫부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각적 
암보에 의해 연주하는 경우에는 중단된 다음 음부터 이어서 연주하
는 것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위대한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예페스는 발터 기제킹으로부터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무엇을 기억하고 그 영상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청각적인 기억이나 후각적인 기억, 촉각적인 기억,  논리적인 
기억 등에 비해 극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자주 대하는 가족의 
얼굴조차도 상대가 없는 곳에서 그 생김생김을 구체적으로  떠올리
기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거울을 보면서 매일같이 대하는  자
기 자신의 얼굴조차도 거울을 보지 않고 상상해내기가 만만치 않습
니다. 이러한 시각적 기억의 난맥상은 상대적으로 그 정보의  양이 
엄청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논리적  정보량에 
의한다면 한글은 2 bytes로 영어 알파벳은 고작 1 byte로 모든  글
자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래픽(시각적)  정보로 
나타내려면 수백 수천 곱절 이상의 기억소자가 필요합니다. 컴퓨터 
부품 중에서 그래픽 카드의 성능이 CPU 못지 않게 처리속도나 메모
리 용량에 민감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
은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신경(視神經)의 직경도 굵은 편입니다. 
 
 

  실제에 있어서 시각적인 기억은 다분히, 논리적인 기억이나 사전 
지식 등의 도움을 받아서 재구성되고 재현(revival)이  가능해지는 
성향을 띱니다.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조차도 흔히 이목구
비(耳目口鼻)의 균형비에 대한 사전지식을 이용하여 얼굴을 그립니
다. 범인의 몽타주(montage) 사진을 작성하는 과정이란 미리  준비
되어 있는 눈이나 눈썹 코 입 등의 무수한 조각 사진들을 증인에게 
보여주고 닮은 것들을 찾아내게 하여 재구성하는 식입니다. 준비된 
조각 사진에 의존하지 않고는 이목구비(耳目口鼻)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악보를 
시각적으로 암보하고 연주시 머리 속으로 악보의 영상을  그려내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성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각적 암보를 위해서는 악보의 내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법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악보의  내
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데에는 시창과 청음, 화성학, 대위법,  작
곡법, 음악형식론, 음악미학, 음악사, 음향학 등에 대한  사전지식
이 크게 되움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훈련된 정확한 귀가 
필요합니다. 이상과 같은 요소들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승효과(相乘效果)를 낳는 속성을  가지
고 있습니다.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곧 악보를 해석하는 작업을 의
미합니다. 악보에 표기되어 있는 음표들은 어쩌면 일종의 암호  같
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읽어서 작곡가가 그리고 있는  음악
을 제대로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직감적인 감각 이상으로 논리적이
고 지적인 톱니바퀴들의 맞물림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정보의 
톱니바퀴들은 악보를 시각적으로 외우고 그러한 시각적 기억을  되
살리는 데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시각적 암보와 관련하여 칼 라이머(Karl Leimer)는 '현대 피아노 
연주법(Modernes Klavierspie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
다. 즉, "악보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귀를 훈련하기 위한) 듣는 
법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필수부가결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곡의 연습에 앞서 그 곡의 음표의 내용부터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악보를 충분히 머리 속에 넣어  완전무결하
게 암보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이를 신속히 해내기  위해서
는 특수한 기억력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악보를 '반복하
여 고찰'하도록 하는데, 매우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조직적인 그
리고 논리적인 고찰을 행하도록 합니다. .. <중략> .. 기제킹이 모
든 난해한 작품들을 피아노를 치지 않고 그저 악보를 읽는  것만으
로 (즉 '반복하여 고찰'함으로써) 암보해내는 사실에 대하여  주목
해야 할 것입니다. 음악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경이적이라고  놀라워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칼 라이머의 말 중에서 "악보를 '반복하여 고찰'하도록  하는데, 
매우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조직적인 그리고 논리적인 고찰을 행
하도록 합니다."라는 귀절은 바로 앞서 제가  이야기한,  악보에서 
"논리적이고 지적인 톱니바퀴들의 맞물림"을 읽어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의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참고가 되도록, 암보와 관련하여 칼 라이머의 말을 좀더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을 교수할 때에 있어서 언제나 전부를  암보로  연주하도록 
하지 않아도 좋으나, 가능한 한 작품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악구의 학습을 통하여 기억력을 끊임없이  훈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초보자에게나 어린이에게도, 가령 그것이 1 박이
나 2 박의 길이일지라도 언제나 확실한 암보에 의한 지배력을 찾는 
일은 유익한 것입니다.
  암보 연주가 아니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지
만, 앞서 말한 대로 두뇌 활동에 의하여 획득한 것과는 비교가  되
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guitar 연습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보(寫譜)  행위조차도 
연주능력의 향상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바흐(J.S.BACH)가 
어린 시절 수 많은 오르간 악보를 필사(筆寫)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보를 베끼면서 음표의 이면에 존재하는 날줄과 
씨줄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고 화성과 선율 진행 등에  보
다 친숙해 질 수도 있습니다.  필자 역시 guitar 공부에  열중하던 
시기에 수없이 많은 악보를 필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전
자복사기란 것이 없었으며 국내 출판의 기타악보도 거의  없었으므
로 어쩌다 악보를 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밤을  새워가며 
필사하곤 했던 것입니다. 사보(寫譜)가 여러모로 시각적 암보에 크
게 도움이 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초상
화가의 사전 지식, 얼굴 각 부위의 비례에 대한 사전 지식 같은 것
을 확고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귀를 훈련하는 데 있어서도 꼭 악기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
니다.  어쩌면 악기보다는 'Bach 인벤션' 등의 악보와  그  연주가 
담긴 MP3 Player나 워커맨 등의 소형 녹음기가 더 도움이 될  것입
니다. 참고로 'Bach의 인벤션'은 정확한 귀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
구되는 구문법(構文法)적인 의미에서의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을 
제대로 듣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대위법적으로 노래
하는 요령을 깨우쳐 줍니다.

                 

  휴가 때마다 악보와 그리고 시창과 청음, 화성학, 대위법,  작곡
법, 음악형식론, 음악미학, 음악사, 음향학 등에 대한 책을 챙겨서 
귀대시 가져 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MP3 Player나 워커맨도요.  하
기에 따라서는 제대 후, 엄청나게 발전한 스스로의 기량에  놀라게 
될 수도 있겠지요.

  주변의 작은 풀벌레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탓에 
MP3 Player를 들어서도 아니 되고, 게다가, 비단 암흑이 아니라 할
지라도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아니 되므로) 흘낏흘낏  악보조차
도 곁눈질 할 수 없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초병으로서의 근무를 설 
때에는 시창 연습이 제격입니다. 처음에는 '도 레 미', 이 세 음만
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악보 참조).


      악보) 초병의 시창 연습 : '도,레,미'만으로 하는 시작 단계 

이 세 음을 충분히 익히고 나면 '파'도 추가하고 그 다음에는 '솔'
도 추가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도 ~ 도'까지 온음계가 다 채
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계음을 하나씩 추가해 나갈 때마다  리듬도 
보다 다양하게 구사해 봅니다. 그리고 반음계에까지 그 영역을  확
장시켜 나가면 더욱 좋겠죠. 초병의 지루한 밤을 지워 줄 만한  것
은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각적 암보가 되어 있는  악보를 
상상으로 연주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
새 먼동이 틀 것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별빛이 흐르는 밤에 
서는 초병 근무 때 가장 잘 어울리는 공부는 사색(思索)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흐의 샤콘느를 한 번 연주해 보고,  악보를  처음부터 
되새기며 사색하고, 그리고 다시 연주해 보노라면 두어 시간  쯤은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사색(思索). 그렇습니다. 악기를 잘 연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 사색과 정신적인 훈련이 어쩌면 손가락 연습보다 더욱 중요합니
다. 단 5분도, 연습할 곡의 악보를 눈과 마음과 머리로 읽으며  생
각해 보는 일 없이 막무가내로 기타선을 뚱기기에만 급급한 학습자
만큼 한심한 사람은 없습니다. 한 시간을 연습할 생각이라면  적어
도 그중 30분 이상을 악보를 읽고 사색하는 데 써야 합니다.

  흔히, 기타학습자들이 몇 가지 손가락 운동법이 군대  3  년간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만,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우둔함이라 생각합니다. 악기가 없이 몇  가지 
손가락 운동만으로 테크닉이 유지-발전되리라고  생각하는  어리석
음. 악기를 연주할 때의 손가락 동작은 극히 미묘하고 섬세하고 다
양해서 몇 가지 단순한 손가락 운동만으로 그러한 기량이  (발전하
는 것은 고사하고) 유지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와 같은 손가락 운동법이란 상식 이하의 -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악보를 읽으며 생각만으로도 연습을 하
는 '발터 기제킹이나 라흐마니노프의 방법'. 그것이 최선의 해답이 
아닐까요. 그와 같은 방법을 따른다면 악기가 없이도 얼마든지  연
습이 가능하니까 말입니다. 암보하고 난 이후에는 악보조차도 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암보한 곡일지라도 가끔씩 다시  악보
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국토방위의 업이 기타리스트나 기타 학습자에게 일종의 시련임에
는 분명하지만, 절망하리만치 과도한 장애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
다, 하기에 따라서는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군생활에 대한 경험 자체가 보다 풍부한 감성을 길러 주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산 속에서는 산의 윤곽을 볼 수가  없습니다. 
산의 윤곽을 보기 위해서는 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합니다. 교수님이나 동료 학습자들 그리고 아침부터 잠자리 들기까
지 온통 기타와 관련된 것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떠나, 멀리서  병
영 생활을 하는 동안 어쩌면 '기타(guitar)음악'의 진면목을  발견
하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여가에는 기타연습에도 열심을  기울이
다 보면 복무기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계속해서 꼬리를 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
서 무한정  글을  계속할  수는  없으므로...'Operating  Research 
(O.R.)'와 '전화위복(轉禍爲福)'...그리고 (낙천과 약간은  허무의 
기미도 섞여 있긴 하지만)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이 3  단어가 
여러분께 얼마간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쉽지만 이쯤에서 이 글
을 마무리짓기로 하겠습니다.

  항상 행운과 즐거움이 가득 찬 병영생활이 되시길  마음을  다해 
기원 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02년 3월 4일, 잔메에서 신현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