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신현수 2005 - 2006, all right reserved. 문서에 의한 필자의 허락 없이 이 글의 전부나 일부를 다른 곳에 게재하거나 이용할 수 없습니다.

참고: 악기에 따른 레가토의 차이 ☜ p.23, 74

     레가토란 음과 음 사이를 끊김이 없도록 이어서 고른 소리로 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데, 악기에 따라 소리를 내는 메커니즘과 연주 방법이 각기 다르므로 그로 인해 음의 이음새나 음향에 있어서 악기별 차이가 존재합니다.

     기악에서의 레가토 주법은 관악기나 활을 사용하는 찰현악기(擦弦樂器, rubbed string instrument)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일련의 음들을 한 번의 호흡으로 이어서 부는 플루트나 (활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 한 번의 활로 그어서 내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전형적인 그리고 완전무결한 레가토라 할 수 있습니다. 이음매나 마디가 없이 고른 소리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러나, 그와 같은 소리를 현을 퉁겨서 소리를 내는 ― 따라서 '튀는' 듯한 음질을 가진 ― 기타로 연주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슬러 주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완전무결한 레가토를 구사할 수 없음은 피아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현을 퉁겨서 소리를 내는 기타보다는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가 그래도 얼마간 유리합니다. 게다가 피아노는 건반을 매개체로 사용하기 때문에 손목의 움직임을 곁들임으로써 완전무결한 정도는 못 된다 해도 꽤 정교한 레가토성(性)의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발음 메커니즘에 있어서 기타와 마찬가지로 현을 퉁겨서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撥弦樂器, plucked string instrument)인 쳄발로 역시 완전무결한 레가토성의 소리를 내기가 불가능하기는 기타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쳄발로보다는 기타가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쳄발로에 비해 월등하게 다양하고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한 터치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별도의 슬러 주법을 써서 레가토성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쳄발로보다는 기타가 분명 유리한 입장이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악기에 따라 소리를 내는 원리가 다르므로, 레가토의 표현 양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은 당연합니다. 어떤 이는 기타나 쳄발로 같은 발현악기로는 레가토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레가토'의 의미를 관악기나 찰현악기의 완전무결한 레가토성의 소리에 한정한다면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가토란 그와 같이 한정적인 음질의 소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넓은 뜻에서 레가토란 일련의 음들을 그 끊김성의 차별화에 의해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으로 그루핑할 수 있는 '연결성의 고른 소리'를 의미합니다. 물론 이 후자에서의 “연결성”이란 상대적인 것입니다. 이 후자의 경우가 보다 널리 통용되는 레가토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피아노나 쳄발로에 있어서도 레가토 주법이 가능한 것이며, 악보에 레가토 이음줄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기타의 레가토 연주는, 가급적이면 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의함과 동시에 개개의 음에 악센트가 느껴지지 않도록 음을 고르게 내는 데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음이 고르지 않으면 고르지 않은 소리로 인해 마디(아티큘레이션)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레가토로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타의 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의 끊김을 최소화하고 (개개의 음에 악센트가 가해지는 일 없이) 음을 고르게 연주함으로써 구현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솜씨 좋은 기타리스트는 가끔 피아니스트에 버금가는 레가토 탄현을 들려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 학습자는 다양한 음색을 구사하는 기법을 익히기에 앞서 반드시 음을 고르게 연주하는 컨트롤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기타는 미묘한 터치의 변화에도 즉각 소리가 달라지는 악기인 만큼, 소리를 고르게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철이 없이 고른 소리를 낼 수 없다면 레가토란 가당치 않습니다. 고른 소리란 음색, 음량, 악센트, 뉘앙스 등이 모두 고른 소리를 말합니다. (※ 관련 내용 ☞ p.168,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레가토 타법의 비중·····」)

     참고로, 기타에 있어서는 패시지 전체의 레가토적 느낌을 향상시키기 위해 슬러 주법을 활용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레가토로 연주하고자 하는 스케일을 연주할 때 그 내부에 부분적으로 슬러 주법을 곁들이면 그리하지 않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음의 이음새가 훨씬 부드럽고 원활하게 들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단, 슬러 주법을 그와 같은 목적, 즉 패시지 전체의 레가토 효과를 증진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슬러 주법의 마지막 음을 끊지 않습니다. 슬러 이후의 음으로 레가토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슬러 주법의 첫 음에 레가토 효과를 저해하는 악센트가 가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음악적 문맥이 악센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아닌 한.

     기타로 개방현이 포함된 하행 음계(악보64.a)를 레가토로 연주할 때, 무심코 연주하면 악보64.b와 같이 개방현의 여음(餘音, lingering sound)이 다음 음에 중첩되어 2성부(?)가 되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불필요한 음으로 지저분해지는 일 없이 정상적인 (단성부의) 레가토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개방현의 여음을 지워야 합니다. 이때 개방현 다음의 음을 짚는 손가락의, 이를테면 악보64.a의 레(D)를 짚는 3번손가락의 살 부분을 개방현에 가볍게 닿게 함으로써 음을 짚음과 동시에 개방현의 여음도 지우는 것이 이에 대처하는 상용 운지법입니다. 별다른 미학적 이유가 없는 한, 하행형 스케일을 연주할 때에는 이와 같이 개방현의 음을 제때 지워서 여음이 다음 음에 겹쳐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악보64.a 개방현이 포함된 하행 음계

악보64.b 개방현이 포함된 하행 음계 ―잘못된 연주

     그러나, 아르페지오를 (레가토로) 연주할 때에는 통상적으로 여음이 허용되는데, 아르페지오란 화음을 분산시켜 연주하는 것이므로 여음들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 원래의 화음을 소리 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보65.a를 플루트로 연주한다면 그 소리는 항상 악보 그대로가 됩니다. 그러나 피아노는 악보65.a를 악보 그대로 연주할 수도 있고 악보65.b와 같이 여음을 지우지 않고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페달(damper pedal)을 밟지 않고 연주한다면 악보 그대로 소리 나게 되며, 페달을 밟고 연주한다면 악보65.b와 같이 소리 나게 되는 식입니다.

악보65.a 아르페지오 ― 플루트 연주

     반면, 기타는 악보65.a를 항상 악보65.b와 같이 연주합니다. 굳이 하려 든다면 악보65.a를 곧이곧대로 연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하려면 매우 불편하거니와 속도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악보65.b 아르페지오 ― 기타 연주

     그러나 화음이 바뀔 때에는 (피아노의 경우) 페달을 떼거나 (기타의 경우) 손가락으로 선을 잡거나 하여 여음을 지움으로써 앞 화음의 여음이 다음 화음에 겹쳐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참고: 프레이징이란 용어 사용의 혼란 ☜ p.69

     지난 제69페이지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는, '프레이징'이란 용어 사용에 있어서의 혼란은, 이 말이 '호흡'을 뜻하기도 하고 '프레이즈(작은악절)' 사이를 구분하여 나타내는 표현법을 뜻하기도 하는,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문장에서의 쉼표가 그러하듯. 문장에서의 쉼표(,) 역시 숨을 쉬는 곳을 의미하기도 하고 절(節, clause)의 구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프레이징이란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주로 '호흡'을 의미했었습니다. 아직 음악의 구문적 구조에 대한 개념이 학문적으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은 시대였으므로. 사람의 목소리나 관악기는 호흡하지 않고 무작정 길게 연주할 수 없습니다. 바이올린과 같은 찰현악기 역시 활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연주 중 숨을 쉬거나 활의 방향을 바꾸는 곳을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프레이징이란 말의 기원인 것입니다. 하지만, 악곡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 분석학이 발달하면서 이 말의 의미가 점차 프레이즈(phrase, 작은악절) 단위를 구분하여 나타내는 표현법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호흡'과 '악절 구분' 중에서 그 의미를 '악절 구분' 쪽에 한정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문법(構文法, sentence structure)적인 용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아티큘레이션'이란 말을 프레이징보다 짧은 호흡이나 활바꿈 등에 의한「분절(分節, 그루핑)」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관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도 일부 음악가 중에는 아티큘레이션이라고 해야 할 경우에도 여전히 프레이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와 같은 용어에 대한 혼란이 잔존하고 있습니다.

참고: 리만(Hugo Riemann) ☜ p.20, 72

     후고·리만(Hugo Riemann, 1849 ~ 1919)은 독일의 음악학자이며, 그의 화성에 대한 저작들은 현대 음악 이론의 기초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독일 튀링엔(Thüringen)주(州)에 위치한 존더스하우젠(Sondershausen)에서 김나지움(Gymnasium)을 졸업한 리만은 대학에서 법학 독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음악학을 그리고 「라이프찌히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등 음악 공부에 전념하게 됩니다.

     리만은 피아니스트, 음악 이론가, 저술가로서 활동하였으며, 음향학, 음악사, 피아노 악파에 관한 연구, 작곡론, 그리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분석적으로 음악의 기본 요소를 연구한 음악 이론과 음악 미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서 「리만 음악 사전(Riemann Musik-Lexikon)」이 대표적인 저술로 손꼽힙니다. 이 책은 1882년 제1판이 출간된 이래 리만이 살아 있는 동안 제9판까지 발간되었습니다. 그 후 리만의 뒤를 이어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 뮐러-블라타우(Joseph Maria Müller-Blattau), 구를리트(Wilibald Gurlitt), 에게브레히트(Hans Heinrich Eggebrecht) 등, 독일 음악학자들의 책임·편집 아래 수정·보완을 계속하며 오늘날까지도 판을 거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발간된 음악 사전의 표준으로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는 당대 유럽 최고의 음악학자였으며, 그의 학문적 업적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리만의 음악학적 업적과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문헌으로는, 「음악사 소·핸드북(Kleines Handbuch der Musikgeschichte)」, 「프레이징 이론」, 「음악 리듬과 박절의 시스템(System der musikalischen Rhythmik und Metrik)」등이 있습니다. 그는 음악사 전반을 순수하게 음악적이고 형식적인 관점에서 본 최초의 음악학자였습니다. 「음악 리듬과 박절의 시스템」에서 그는 모든 시대의 음악 구성을 4마디 및 8마디의 악절로서 설명하려 했었습니다만, 무리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은 오늘날의 여러 음악 이론 서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리만의 이론들은 열렬한 찬사와 비난과 논쟁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그의 이론 중에는 어느 정도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이 적지 않았지만, 현시대 음악학 중 상당 분야의 학문적 진보가 그의 이론에 힘입은 바 크거나, 또는 그의 이론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변증법적인 진화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오늘날 「체계적 음악 연구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